미국반도체공업협회(SIA)가 발표하는 반도체의 BB율(출하액대비 수주액
비율)이 지난 1월 0.93을 기록, 5년만에 처음으로 1.0밑으로 하락함에 따라
세계 반도체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지난 12일 이 수치가 발표되자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마이크론 테크놀러지,
인텔,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등 반도체관련업종의 주가가 일제히 떨어졌다.

메모리칩도 국제시장에서 현물가격이 지난해 11월 이후 최근까지 3분의 1
정도가 하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최근에는 메모리칩가격이 내년엔 폭락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반도체
관련주의 주가가 앞으로 계속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SIA가 발표하는 BB율은 북미시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이지만 미국이
세계 반도체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어 세계경기를 반영하는 척도로 통하고
있다.

BB율이 0.93이란 얘기는 쉽게 말해 출하되는 반도체칩 100달러어치에 대해
칩제조업자들이 받는 주문은 93달러어치에 불과해 공급초과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BB율은 통상 1.0이상이 되어야 반도체산업이 건강한 상태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반도체가 공급초과양상을 보이면서 가격이 내리고 있는 것은 메모리칩
업체들의 시설확장에 주요 원인이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반도체는 지난 92년이후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공급이 달리자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생산시설을 늘려왔으나 최근들어 개인용컴퓨터 판매증가율이
둔화하면서 공급과잉상태가 빚어지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앞으로의 반도체 공급과잉상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있다.

업계의 시각은 갈려있는 상태다.

지금이 경기하강국면이라고 진단하는 분석가들중에는 그동안 반도체업체
들이 꾸준히 늘려온 새 생산시설들이 올 연말과 내년에 걸쳐 잇따라 가동에
들어간다는 것을 지적한다.

칩공장건설에 최소 10억달러가 넘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현실에서
투자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반도체업체들이 한시바삐 공장가동을 시작
하려 할 것이란 분석이다.

또 일부 메모리의 경우 생산시설을 다른 칩 생산에 전용하는 것이 가능
하지만 S램과 같은 반도체의 경우 시장이 너무 작아 용량이 남아도는 D램
시설을 돌려 S램을 생산할수 없다는 점도 시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한 견해에
속한다.

반도체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지난 몇년간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많은
업체들은 주문한 반도체를 손에 넣기까지 6개월씩이나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되자 많은 칩제조업체들은 생산설비를 증강하면서 소비자들이
발주에서 배달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불과 수주동안으로 단축시켜 놓았다.

이제는 PC제조업체등 칩 실수요자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주요 부품을
미리 주문하지 않고도 창고에 쌓아놓은 재고에서 가져다 사용할만큼 공급에
여유가 생겼다.

반도체업체인 MGV 인터내셔널의 존 워윅부사장은 특히 연간 PC매출의 40%를
차지하는 4.4분기중에 반도체 칩이 공급과잉을 빚은 사실을 꺼림칙하게
여기고 있다.

그는 종래 매년 3.4분기까지는 각 분기별 PC매출액이 항상 전년 4.4분기
매출액을 밑돌았다는 점을 들어 공급과잉이 최소한 올 4.4분기까지는 해소
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현재의 공급과잉을 지난 85~86년에 있었던 반도체
가격 폭락상황과 비슷한 것으로 진단하면서 공급과잉이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이란 극단적인 가정도 내놓고 있다.

반면 현시황을 단기적인 것으로 보는 낙관론자들은 BB율이 1밑으로 내려
섰던 지난 91년1월 불황기에도 한달만인 91년 2월에 BB율이 1.06으로 올랐던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올 반도체산업성장률이 지난해의 40%보다는 다소 못미치더라도 29%정도는
성장할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일부 분석가중에는 현재의 불황이 단순한 재고조정에 불과할 뿐이라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로버트슨 스테펜스사의 분석가인 댄 나일스는 메모리등의 공급과잉과 최근
가격인하가 PC가격인하를 초래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컴퓨터제조업체들로
하여금 성능이 좋은 새 컴퓨터개발을 자극할 것이라면서 올 하반기부터는
수급이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경기사이클을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얼마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반도체업체들사이에서는 공급과잉에 따른 약세에서 당분간은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 이창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6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