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에 앨런
그린스펀 현의장이 재임명돼 오는2000년까지 4년동안 미국경제정책을 주도
하게 됐다.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다음달 2일자로 임기가 끝나는 그린스펀의장을
연임시킨다고 22일 발표했다.

또 공석인 FRB부의장과 이사에 앨리스 리블린 백악관행정관리예산국장과
로렌스 마이어 워싱턴대교수를 각각 임명했다.

이들 세사람은 상원의 인준절차를 밟는 통과의례만을 남겨 놓고 있다.

다른 나라로 치면 중앙은행총재인 FRB의장은 미국의 통화금융정책을 책임
지고 있다.

완전자유시장경제체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통화재정정책이 정부가
취할수 있는 유일한 정책수단이다.

따라서 FRB의 입장, 특히 의장의 일거수 일투족은 미국 경기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어느성향의 인사가 앉느냐에 따라 미경제의
향방이 바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영향력때문에 클린턴정부는 그동안 행정부의 구미에 맞는 통화정책
을 펴줄 인물을 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이면에는 그린스펀의장이 클린턴정부에 그리 협조적이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

한마디로 클린턴은 금리를 가능한한 낮게 유지하는 경기활성화방안을
원했지만 그린스펀은 인플레우려등을 들어 최소한의 금리인하라는 "인색한"
반응을 보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린턴대통령은 그린스펀을 선택하지 않을수 없었다.

워싱턴일각에서는 "선택"이 아니라 "강요"받은 인사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해석이다.

그간 클린턴은 국민들에게 힘찬 경제상을 보여주기 위해 되도록이면 낮은
금리를 원했으나 지난 94년과 95년초 그린스펀은 무려 7차례나 금리를 인상
하는 경기안정책을 고집했었다.

클린턴은 백악관의 의지를 실천해줄 인물로 앨런 블라인드 전FRB부의장을
의장감으로 내정했다가 여론에 밀려 포기했다.

차선책으로 이달초까지도 성장론자인 뉴욕의 투자은행가 펠렉스 로허틴을
FRB의 부의장으로 심어 그린스펀을 견제하려 했으나 이마저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의 반대에 부딪쳐 좌절됐다.

할수없이 클린턴은 그린스펀을 연임시키고 백악관식구인 리블린국장을
부의장으로 임명하는 선에서 만족해야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리블린국장의 경우 중도파로 미국상원에서도 반기를 들 명분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 인사로 풀이된다.

또 한 사람인 신임 마이어 FRB이사도 경제예측전문가로 공화당이 다수인
미국 상원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인물로 평가된다.

이같은 내부갈등속에 자리가 보존된 그린스펀은 8년간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70세의 고령이 됐지만 또 4년을 더해 총 12년간 미국경제의 돈줄을 쥐고
흔든 인물로 기록되게 됐다.

FRB의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일단 임명되고 나면 대통령은 해임시킬
권한이 없기 때문에 4년동안은 대통령의 눈치를 볼 필요 없는 절대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다.

아직 깨지지 않고 있는 최장수기록은 지난 51년에 취임했던 맥 마틴의장
으로 그의 재직기간은 19년10개월이었다.

리블린 신임 부의장(64)은 브루킹스연구원의 위원과 보건교육부 차관보,
조지매슨대 교수등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맹렬여성이다.

그녀는 특히 미국의 재정적자감축이 시급한데도 의회와 행정부는 말로만
적자감축을 외치고 행동은 재정지출을 확대하는데로 쏠리고 있다는 직언을
서슴지 않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 양홍모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