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개혁의 좌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개혁부작용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개혁주도세력조차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지난 4년동안 추진해온 시장경제개혁의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6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권력누수현상까지 겹쳐 일부서방분석가들은
"두터운 안개에 휩싸여 다시 암흑기로 들어서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러시아경제는 연방해체이후 올해 처음으로 플러스 성장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되어 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부터 개혁의 결실을 거두는 시기인만큼 되도록
빨리, 또 확고하게 자유시장경제체제를 굳혀 나가라고 러시아당국에 권고
했다.

이 권고를 받아들일 경우 앞으로 3년간 90억달러상당의 차관을 제공하겠다
는 약속도 내놓았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런 권고와 상반된 길로 접어들고 있다.

길이 엇갈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총선이후부터.

총선결과 국가두마(하원)가 공산당주도체제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엘친정부
의 개혁정책이 난관을 맞게된 것이다.

옐친대통령은 국가두마의 직접적 견제보다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더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는 6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때문이다.

옐친대통령은 총선참패직후에는 경제개혁속도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체첸사태와 국영기업의 잇따른 파업 등으로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자 개혁의지를 슬거머니 감추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 경제개혁의 기수로 꼽혔던 아나톨리 추바이스 경제담당
부총리가 전격 사임해 심상찮은 조짐을 보인데 이어이달들어서는 개혁정책의
뿌리를 위태롭게할 사안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개혁후퇴의 신호탄은 옐친대통령이 먼저 터뜨렸다.

옐친은 3년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국영기업의 민영화작업을 앞으로 두달간
중단한다고 지난 4일 발표했다.

또 63억달러의 대통령특별기금을 조성해 공무원과 주요국영기업의 체불
임금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임금대폭인상과, 기간산업및 군현대화투자를 위해서도 수십억
달러를 재정자금에서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인기만회를 노린 선심공약의 연발이었다.

이같은 공약을 실천으로 옮기려면 줄잡아 150억달러이상의 예산이 소요
된다는게 러시아 중앙은행의 계산이다.

새로운 국가두마가 구성되기 이전에 미리 확정지은 러시아의 올해 예산안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4%인 170억달러선으로 줄인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물가고삐를 조이기 위한 긴축예산안이다.

그런데 옐친대통령이 느닷없이 팽창예산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재정구조악화와 인플레압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즉각 제기됐다.

15일부터 러시아정부와 차관협상에 들어가는 IMF도 이 점을 문제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두번째 개혁후퇴신호는 아나톨리 쿨리코프 러시아내무장관의 발언으로부터
나왔다.

쿨리코프장관은 지난 13일 일부 대기업을 국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통화량을 늘리지 않고 팽창예산을 실현할 수방법은 국영화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독점적 지위에 있는 대형기업을 국영화해 이윤이 날만큼 판매가격을 보장해
주면 국고자산을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비록 내무장관의 개인적 견해에 불과하지만 이런 주장이 옐친대통령의
귀에 솔깃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 방안의 문제는 이 시장경제체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데 있다.

IMF의 차관제공조건에 부합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때를 맞춰 국가두마는 지난 3년간의 공기업 민영화과정에서 고위공무원
부정행위가 개입됐다는 이유로 15일부터 특별청문회에 들어갔다.

이 청문회에는추바이스 전부총리를 비롯해 러시아증권거래위원회의
바실리예프 부위원장, 보익코 민영화연구소소장 등 개혁실세들이 줄줄이
불려가게 되어 있다.

국가두마는청문회를 통해 과거민영화작업의 문제점이 드러나면 이를 근거로
옐친을 더욱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지금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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