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 특약 독점 전재 ]]]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금융정책을 결정할때 많은
경제지표를 참고한다.

이 가운데서도 실업률을 가장 중시한다.

그런데 최근 인플레이션과 실업률간의 상관관계를 놓고 다시 논쟁이 일고
있다.

11월중 미국의 실업률은 5.6%였다.

94년에 실업률 산정 방식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이는 5.2%로 낮아졌을
것이다.

5.2%는 인플레이션이 시작되기 직전인 89년 1.4분기 수준과 비슷하다.

이처럼 실업률이 낮아졌는데도 경제전문가들은 FRB가 오는 19일 열리는
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한때 주류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간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주장은 필립스곡선을 재해석한 이른바 "자연실업률"(완전고용
상태의 실업률) 이론이다.

필립스곡선은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의 상충관계를 설명하는 그래프이다.

즉, 실업률이 떨어지면 물가가 오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50년대와 60년대에는 경제가 이 이론대로 움직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간의 관계는 느슨해졌다.

자연실업률이론을 보자.

필립스곡선은 실업률과 물가상승률간에 관계가 있다고 설명하는데 비해
자연실업률이론은 자연실업률만이 물가상승률과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설명
한다.

실업률이 이 수준을 밑돌면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물가상승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실업률이 이 수준을 웃돌면 물가상승률은 떨어진다.

자연실업률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자연실업률이 고정되어 있다고 말하진
않는다.

어떤 미시경제정책을 택하느냐에 따라 그 수준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가령 최저임금을 올리거나 실업수당을 늘리면 자연실업률이 높아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난 수십년간 유럽에서는 자연실업률이 높아졌다.

미국에서는 자연실업률이 6% 안팎에서 안정된 양상을 보였다.

지금까지는 물가상승률을 예측하는데 이 자연실업률을 활용했다.

실제로 60년대이후 미국에서 실업률이 6%를 밑돌면 곧이어 인플레이션이
뒤따랐다.

그런데 지난 15개월 동안엔 실업률이 6%를 밑돌았는데도 물가는 동요하지
않았다.

10월중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8%에 그쳤다.

자연실업률이론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자연실업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자연실업률 수준이 대폭 떨어져 경제정책 지표로 유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자연실업률이론을 방어하고 나섰다.

스탠퍼드대의 폴 크루그만 교수는 "인터내셔널 이코노미" 최근호에서
자연실업률이론을 비판하는 이들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단호하게 반박했다.

캔사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의 스튜어트 와이너 역시 다른 논문("자연실업률
이론에 대한 도전")에서 자연실업률이론을 옹호했다.

논점을 대별하면 세가지이다.

첫째는 세계화이다.

자연실업률이론 비판론자들은 미국경제의 개방이 확대되면서 게임의 법칙이
변했다고 지적한다.

제품이든 노동이든 국내에서 부족하면 외국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 무관해졌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한가지 맹점은 수입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12%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수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년대말에 비해 그다지
달라지지도 않았다.

따라서 실업률이 종래 자연실업률로 여겨져온 6%를 밑도는데도 세계화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뒤따르지 않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두번째 논점은 드러나지 않은 실업률.

자연실업률 비판론자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실업률은 실업의 실상을 과소
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식집계에서는 구직을 포기한 "좌절한 노동자"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실업자군이 존재하기 때문에 임금이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은 대부분 비숙련노동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아무리 많아도 노동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숙련노동자들의
임금은 오른다.

세번째 논점은 생산성 혁신이다.

최근 수년동안 자동화가 확산되면서 생산성이 급속히 향상됐다.

이에 따라 생산이 부쩍 늘어도 인플레이션이 뒤따르지 않았다.

따라서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관계가 미약해졌다고 비판론자들은 주장
한다.

그러나 생산성이 향상돼도 자연실업률이 낮아지지 않는다는게 지지론자들의
입장이다.

생산성이 향상돼도 실업률이 자연실업률을 밑돌면 안정성장은 지속되며
자연실업률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인플레이션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실업률이 자연실업률(6%)을 밑도는데도 인플레이션
조짐은 왜 나타나지 않는가.

이 의문점도 자연실업률이론으로 설명할수 있다.

실업률이 자연실업률 수준을 웃돌기 시작하면 일시적으로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이 낮아진다.

물가가 뛰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종합하면 자연실업률을 통해 물가상승률을 예측해서는 안된다
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다.

앞으로 수년간 미국 물가가 안정된다면 자연실업률이 맞지 않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 아니다.

금융정책을 통해 경기과열을 예방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96년중 미국에서 실업률이 급격히 오를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면
FRB가 금리를 내릴 여지는 한정돼 있다.

< 정리=김광현기자 >

"How "natural" is unemployment?"
Dec.16, 1995, c The Economist, London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