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경제개혁은 성형수술로 비유된다.

89년 11월 시민포럼 주도로 "벨벳혁명"이 닻을 올린뒤 체코는 헌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원래 몸은 실했던 만큼 껍질만 바꾸면 유럽의 중심으로서 누렸던 영화를
되찾을수 있다는게 체코 국민들의 생각이었다.

간단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체코의 성형수술은 의외로 일찍 마무리
됐다.

수술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유럽연합(EU)은 준회원국지위를 인정(95년 2월)했고 선진공업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1월말 체코를 26번째 회원국으로
받아줬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체코의
국가신용등급을 "BBB+"에서 A등급으로 올려줬다.

S&P는 체코의 등급상향조정을 "순조롭게 시장경제로 전환했고 사회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체코 정부관계자들에게 "시장경제 이행작업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이냐"고
묻는다면 큰 실례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넘어간지 오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체코에서 대형프로젝트를 협상할 때 "경제협력"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금물이다.

사업은 이해관계가 서로 맞물려서 하는 것이지 온정을 베푸는게
아니라는 지적을 받는다.

체코경제가 활짝 개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93년 슬로바키아공화국의 분리독립으로 잠시 주춤거리던 체코경제가
지난해 2.6%의 국내 총생산(GDP)성장률을 달성한데 이어 올해에는 4%
선으로 성장률이 높아질 전망이다.

내년에는 5%대의 성장률 달성이 무난하다는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민간기업들의 생산성향상 노력에 힘입어 산업생산증가율도 지난해
2.3%에서 올해 7.7%선으로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체코의 경제성장은 특히 다른 시장경제도입국들과 질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시장경제전환과정에서는 불안한 통화와 과도한 재정지출 등으로 높은
인플레를 수반하게 마련인데 체코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

이웃 헝가리나 폴란드가 올해도 20~30%씩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비해 체코 물가는 올해 9.7%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시장경제도입과정에서는 산업생산성 제고를 위한 잉여노동인력 삭감이
뒤따르고 이 때문에 실업문제가 등장하는게 일반적인 현상인데 체코는
이 문제에서도 예외다.

93년 실업률 3.5%, 94년 3.2%, 올 10월말 현재 실업률은 2.8%로 거의
완전고용에 가깝다.

산업생산능력이 향상되면서도 실업률이 떨어지는 것은 매우 활발한
신규투자가 이뤄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경제성장세가 이어지는데도 체코정부는 일찍부터 사회주의 잔재인
과도한 사회복지비지출에 메스를 대 재정수지는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6월말 현재 재정수지 흑자규모는 3억7천만달러이다.

대체로 화창한 체코경제에 먹구름이 있다면 늘어나는 무역수지적자.
경공업분야의 설비수입이 크게 늘어나면서 수입증가세가 수출증가세를
앞지르는 바람에 지난해 4억3천6백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고 올 상반기
에만 무역적자 규모가 17억6천2백만달러에 이른다.

이에대해 클라우스 총리는 "신규설비투자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문제될게 전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체코는 무역수지적자를 상쇄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화려한 문화자산과 사통팔달한 지리적 조건을 바탕으로 GDP의 5.5%에
해당하는 외화를 끌어들이는 관광산업이 바로 그 무기다.

토.일요일이 되면 수도 프라하의 1백30만 시민은 대부분 근교의
자가농장에 머문다.

대신 매주말 연인원 3백만여명의 외국관광객들이 프라하로 들어와
낙옆 뿌리듯 돈을 쏟아붓고 다닌다.

체코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외국인 입국자수는 연인원 10억1천1백만
명으로 뿌린 돈은 19억7천만달러에 달한다.

공식관광수입이 19억달러이지 무자료거래까지 포함하면 실제관광
외화수입은 40억달러선에 이르는 것으로 체코정부는 추산한다.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체코가 이런 엄청난 관광수입 덕택에
경상수지는 균형을 맞추고 있고 외화보유고는 크로나화의 절상압박요인이
될 정도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다.

93년 62억달러이던 중앙은행 외화보유고가 94년에는 89억달러로, 올
10월 현재는 1백49억달러로 급증했다.

내실있는 성장을 이룩하면서 다소 느긋해진 체코당국은 외국기업들에
투자혜택을 주지 않는다.

90년 5월에 신합작기업법을 만들어 외국인 기업설립 절차를 간소화하고
투자지분상한선을 철폐하는등 투자유인책을 폈으나 이를 93년부터는
일반상법에 흡수시켜 버렸다.

내국인과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다.

들어오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자세다.

외국자본에 대한 체코의 이런 자세 때문인지 서유럽국가의 투자자문
보고서들은 체코시장이 "체리밭인 것만은 분명한데 농익은 체리밭"이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큰 과실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또 서방의 소비위주경제체제에서 보면 다소 옹색하게 보이는 체코
국민들의 근검 절약생활도 체코시장을 부정적으로 보게하는 이유중
하나다.

그러면서도 체코 소비자들은 까다롭기로 소문나 있다.

"체코시장에서는 폴란드나 헝가리와는 달리 가격경쟁우위가 관철되지
않는다.

가격이 높더라도 품질만 우수하면 시장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반면
아무리 가격이 싼 제품도 품질이 나쁘면 여지없이 퇴짜를 맞는다"고
(주)대우프라하 지사장 고주영 부장은 말한다.

현대 프라하지사장 허환이사는 체코시장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게
자동차시장이라고 말한다.

"연간 수입자동차 시장규모가 2만~2만5천대 수준에 불과한데 수입형식
요건이나 환경기준은 EU시장 보다 더 까다롭다.

소비자들은 보통 3개이상의 전문잡지를 보고 제품의 성능과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 평가한다음 한달이상 걸려서 최종구매대상을 선택한다.

여기에다 웬만한 자동차회사들은 모두 진출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제품하자가 드러나거나 변칙판매행위가 보이면 집중포화를 각오해야
한다"

체코 진출은 단기이익에 급급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체코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시장기반을 다지는 기업은 앞으로 무궁무진한
성장잠재력을 지닌 중.동유럽 전체지역에서도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을
기업이다.

따라서 체코는 동방시장개척의 바로미터를 제공할 시장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