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TV의 위세가 날로 꺽이는것은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국영TV의 천국이었던 유럽도 흥행성을 내세운 민영TV의 인기에 눌려
"시청률격감"이란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국경을 초월한 위성방송이 해마다
늘어나면서 국영방송의 입지는 한층 위축되는 분위기다.

전문성을 강조하는 유러스포츠 필름네트등은 이미 유럽전역의 안방을
넘나들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여기다 지난달초에는 플레이보이채널이 영국에 진을 쳤고 파라마운트사
소유 사이파이채널도 스칸디나비아에서 벨기에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확대
하는등 미국계 채널의 진입이 날로 활발해지면서 유럽국영 TV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몰린 처지다.

영국의 경우 민영 채널4와 위성채널의 시청자가 급증,국영 BBC1의 시청률은
90년 37%에서 지난해는 32%수준으로 떨어졌다.

또다른 국영방송사인 BBC2의 시청률을 합쳐도 50%를 훨씬 밑도는 실정이다.

스페인 국영TVE1과 TVE2 양방송의 시청률은 5년전 73%로 절대적인 우위를
보였으나 지금은 상업방송에 밀려 39%수준에 불과하다.

독일 ARD와 ZDF도 한때 60%에 이르든 시청률이 40%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밖에 오스트리아 국영TV는 시청률이 72%에서 62% 핀란드도 93년까지는
독점을 누렸으나 지금은 43%의 시청률을 유지하는데 만족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민영TV가 그인기를 활용, 소유주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총리자리에 올라서게 했다.

유럽방송연합의 장베르나르 뮌히사무국장은 "미국에서 이미 진행되듯 위성
및 케이블채널이 언젠가는 국영TV는 물론 상업방송의 위세도 꺾어놓는
시대가 올것"이라 예견했다.

프랑스정부가 "역외 흥행단체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유럽에 진입, 유럽에서
제작된 필름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며 역외산 프로그램의 방영권을
제한하자고 끈질기게 주장한 것도 이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시청료를 내지 않겠다는 계층이 확대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국영TV채널을 보지도 않는데 고지서는 해마다 날아오니 불만이 커질수밖에
없다.

스페인과 포르투갈만이 시청료 납부제도가 없을뿐 오스트리아는 연간
2백61달러 벨기에 2백36달러 덴마크 2백27달러 독일 1백93달러등 국가별로
다소 차이는 있으나 유럽국민 1인당 지불하는 평균 시청료는 1백77달러정도.

국민소득 수준을 감안할때 큰부담은 아니나 시청률납부 실적은 해마다
떨어져 이탈리아는 78% 벨기에와 프랑스도 80%정도에 불과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청료납부 거부운동도 일고 있는 실정이다.

케이블TV의 경우 자신이 선택했기 때문에 시청료를 내는 것은 당연하나
TV를 소유했다는 이유로 국영TV에 해마다 돈을 지불하는 것은 납득할수
없다는 불만의 표출인 셈이다.

이같은 위기에 대응, 유럽국영방송들도 상업방송처럼 흥미위주의 쇼
프로그램및 게임쇼를 대량 제작하고 연속극을 방영하는등 치열한 변신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처럼 공익위주의 방송으로는 생존자체가 어렵다는 현실인식의 반영인
셈이다.

독일 국영ARD는 가정용 연속극 전문제작업체인 그룬디 월드와이드사의
도움을 받아 "금지된 사랑"이란 프로그램을 방영중에 있다.

이탈리아의 국영RA12사도 내년4월 방영예정으로 성인용 일일연속극의
제작에 돌입했다.

국영방송의 본래 취지인 방송의 공영성을 뒷전에 돌리고 시청률 올리기
경쟁에 본격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대세는 민영방송으로 기울고 있다는게 현지의 일반적 견해이다.

국적을 초월한 위성방송이 늘어날수록 국영방송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질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 강하게 깔려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