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시내의 한복판에는 스탈린의 선물 인민문화궁전이
우람하게 솟아있다.

외국인들에겐 이 건물이 아직까지 폴란드의 상징으로 보일지모르지만
폴란드국민들에겐 눈엣가시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과거를 연상시키기때문이다.

한때 이 건물의 철거문제를 놓고 시민공청회까지 열렸으나 다른 현대식
건물을 빨리 건설해 눈에 띄지 않도록 만들자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부지런히 양화를 쌓아 자연스럽게 악화를 구축하자는 다짐으로 결론을
맺은 셈이다.

그리고 폴란드인들의 이런 다짐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실천으로
옮겨졌다.

폴란드는 공산체제국가중 시장경제를 맨먼저 도입했고 체제이행기의
후유증도 가장 빨리 벗어나고 있다.

경제지표로 보면 폴란드는 올해 유럽전체에서 단연 돋보이는 성장을
이룩했다.

지난해 4.7%의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을 달성한데 이어 올해에는
6.5% 성장이 무난할 전망이다.

제조업들의 생산성향상 노력의 반대급부로 94년말 현재 16%까지
치솟았던 실업률도 올연말쯤이면 14%대로 가라앉을 것으로 폴란드정부는
확신한다.

물가상승률도 지난 92년 43%, 93년 35%, 94년 32%에서 올해에는 28%로
계속 내려가는 추세다.

이웃 헝가리나 체코에 비해 다소 저조했던 외국자본의 투자도 올들어서
크게 활기를 띠기 시작해 굵직굵직한 투자프로젝트들이 잇따라 성사되고
있다.

경제지표로 보면 폴란드는 전세계에서 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중
하나다.

"시장재편작업은 이미 93년께 마무리됐고 지난해부터는 시장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봐야하는데 너무 빨리 성숙되고 있기 때문에 현지
외국기업들조차 숨가빠할 정도다"(박하균 LG전자 바르샤바지사장)

"폴란드에서는 요즘 3개월만 판매현장에 나가보지 않으면 시장의
흐름을 전혀 알 수 없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장에 최근들어 외국의 금융기관들이 속속 뛰어들고
있다.

외국금융기관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그만큼 시장위험요소가 사라졌다는
것을 반영한다"(김석철 대우전자폴란드판매법인장)

폴란드경제의 왕성한 활력은 지표상으로 모두 드러나지 않는다.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박람회의 도시로 알려진 포즈난을 지나
독일국경지역으로 가면 연중내내 교통체증이 벌어지는 곳이 있다.

구동독의 주민들이 폴란드제 의류와 각종 잡화류를 사기위해 줄을
서 있는 것이다.

대부분 독일에서 사는 가격의 절반으로 판매한다.

폴란드정부는 이런 국경무역에서 GDP의 25%에 해당하는 돈이 오가는
것으로 추산한다.

경상계정에 잡히지 않는 국경수출규모가 낮게 잡아 4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래서 폴란드 정부는 지난 93년부터 올해까지 누계액기준으로
30억달러정도의 무역수지적자를 기록한데 대해서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필요할 경우 국경무역을 양성화시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폴란드국민의 구매력도 공식화된 수치자료만으론 알기 힘들다.

가계경제지표를 통해 구매력을 가늠한다면 현재 폴란드국민들은 대부분
파산해야 마땅하다.

폴란드 세무당국이 집계한 도시근로자 1인당 평균월소득은 2백70달러
정도다.

경력 20년이상의 대학교수 월급은 4백달러 남짓이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가구당 월6백달러이상의 근로소득을 얻기 힘든
셈이다.

그런데 수도 바르샤바의 경우를 보면 저소득층이 사는 소형아파트의
월임대료가 보통 1백50달러를 넘는다.

바르샤바시민들에겐 한국에서 보다 결코 싸지 않은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이고 웬만하면 실제로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수수께끼는 폴란드 국민들의 절대노동시간이 짧고 부대수입을
올릴 수있는 기회가 많다는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대우자동차 유춘식부사장은 지난 5월 폴란드의 상용차제조회사 FSL을
인수한뒤 근로자들의 근무태도변화를 보면서 크게 놀란적이 있다.

근로자들의 사회주의식 기질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고민했으나 의의로
적극적인 경영마인드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부사장은 "회사의 장기경영비전을 제시한 다음부터 사업장별로
자발적으로 활발하게 경영개선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 근로자들의 이같은 경영마인드는 공산체제에서 각 사업장마다
노동자위원회를 구성해 경영에 참가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자가
업무시간외에 크고 작은 사업경험을 갖고 있었던 것도 한 원인이다.

아무튼 밖으로 드러나는 가구당 가처분소득으로 구매력을 측정하게
되면 폴란드는 보잘 것 없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엄청난 수요가 잠복되어있고 욕구도 의외로 다양한
곳이 폴란드시장이다.

KOTRA바르샤바무역관 이용승관장은 "아직까지는 가격경쟁이 품질경쟁
보다 강조되고 있지만 점차 고소득층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브랜드제품
선호추세가 빠른 속도로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폴란드 소비자들은 독일 등 인근 서구지역에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데다
위성TV수신으로도 늘상 서구소비문화를 접하고 있어 마냥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폴란드시장이 장미빛 전망으로만 가득찬게 아니다.

우선 시장규모가 갑자기 커지는 것과 비례해 수출입제도나 투자유치
제도도 급변, 장기적인 진출전략을 세우기가 힘들다.

여기에다 관료주의병폐가 일부 남아 있어 이미 세운 원칙이 왔다갔다
하는 사례도 있다.

폴란드정부가 지난 7월 대기오염방지를 이유로 모든 수입차량에
무연엔진을 부착하도록 의무화했으나 이탈리아 피아트의7백50cc 급
승용차만은 2년간 유예시켜 준 것이 바로 그런 예다.

폴란드는 2000년 유럽연합(EU)가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EU산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수입쿼터를 배정하거나 관세율을
차등적용하는 등 EU에 대한 우호교역을 시행하고 있다.

대신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는 안전검사 등 각종 비관세보호장치를
통해 시장장벽을 강화하고있다.

폴란드는 몇해 지나지 않아 성장잠재력을 갖춘 시장이 아니라 서유럽
지역만큼 덩치가 큰 시장으로 변할 것이다.

이때까지 현지 생산거점을 확보해 두거나 확실한 브랜드 이미지를
정착시켜 놓지 않으면 이 시장에서도 한국제품은 살아남기 어렵다.

아직 폴란드에서 한국상품의 브랜드이미지는 "유럽제품 보다 싸게
살 수 있는 무난한 품질의 제품"에 불과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