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정파간 불협화음이 우리 보다도 더 심한 헝가리의회가 지난달 30일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정부가 제출한 "외국군대주둔환영법안"을 찬성 3백12대 반대 1표차로
통과시킨 것이다.

반대 1표조차도 나중에는 투표착오로 밝혀졌다.

6개정당이 난립해 있는 헝가리의회가 과거 공산당시절에나 가능했던
만장일치 찬성을 이끌어낸 배경은 간단하다.

보스니아 내전종식과 함께 수만명의 유엔군이 헝가리에 주둔할수 있다는
기대로 헝가리의원들은 하나가 됐던 것이다.

유엔군대가 헝가리에 진주하게되면 자연스럽게 헝가리의 서방편입행보가
더욱 빨라질 것이고 부자나라 주둔군인들의 씀씀이에 대해서도 눈독을
들일 수 밖에 없는게 헝가리의 현실적인 사정이다.

지난 56년 소련군대입성을 헝가리인들은 아직까지 역사의 비운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런 헝가리인들이 성격은 다르지만 외국군대에 마당을 열어주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것을 보면 서방세계편입과 시장경제확립을 얼마나 갈구하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헝가리는 사회주의경제 해체의 선봉에 선 것을 자랑으로 내세운다.

지난 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무렵 동독 피난민들이 서독이나
오스트리아로 들어갈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줬다는 사실을 요즘도
헝가리인들은 강조한다.

이런 서방지향적 시장경제추구형 성격으로 서방기업들에 헝가리는
일찌감치 구공산권시장진출의 현관으로 자리매김됐다.

89년이후 대헝가리 외국인투자액은 94년말 현재 누적액 기준으로
84억달러에 달해 이 기간중 중.동구권전체 외국인투자액의 약47%를
차지한다.

지난 91년 1월부터 외국인투자유치전담기구를 설치하고 각종
투자인센티브를 제공해 94년말 현재 헝가리내 외국인기업설립건수가
2만5천8백99개사에 이른다.

대한투자무역진흥공사(KOTRA) 부다페스트무역관 안영환관장은 "금융
무역 외환제도 등을 기준으로 보면 헝가리는 이미 선진자본주의국 대열에
올라섰다"고 평가한다.

여기에다 헝가리는 지난 91년 12월 유럽연합(EU)준회원국으로 가입했고
92년에는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와 함께 중부유럽자유무역협정(CEFTA)을
체결해 오는 97년부터 단계적으로 교역자유화를 시행할 계획이다.

한국과도 지난 89년과 90년 두차례의 상호정상방문회담을 통해
투자교역의 발판을 일찌감치 마련했다.

또 실제로 우리기업들은 헝가리를 중.동유럽진출의 전초기지로 활용해
왔다.

헝가리는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주의 잔재를 완전히 떨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겉모습은 시장경제이고 의식과 체질에서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단계다.

헝가리의 사회주의적 잔재는 어느곳에서나 쉽게 발견할수 있다.

부다페스트시내 한복판에 있는 베르쉬마르티광장을 가면 19세기말
프랑스의 마담 죄르보가 세운 대형 카페가 눈에 띈다.

안팎으로 2백여개의 좌석을 갖춘 이 죄르보카페는 헝가리의 유명한
문인 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시민문화의 중심지로 꼽힌다.

헝가리 정부는 시민들의 문화적 자존심을 고려해 이 카페만은 아직까지
민영화 하지 않았다.

경쟁입찰로 민영화할 경우 돈많은 외국인이 가져갈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헝가리다운 이 카페의 화장실에 들어서면 나란히 붙어
있는 남녀출입구통로에 각각 한사람씩 앉아 화장실 사용료를 받는다.

또 화장실을 청소하는 직원은 따로 채용되어 있다.

화장실 사용료를 차값에 포함시켜 받는게 관리비절감차원에서 훨씬
효과적이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 카페 지배인은 "그러면 몇사람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며 정색을 했다.

지난 3월 재정적자와 무역수지적자 축소를 목적으로 초긴축경제개혁안을
내놓은 헝가리정부도 높은 실업문제만은 산업생산성을 높이는 것보다
우선과제로 삼는다.

그래서 도무지 자생력이 없어 보이는 공기업들을 인원삭감 없이
인수해갈 외국기업이 있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헝가리정부는 외국자본을 유치할때 낮은 임금구조를 중요한 투자이점의
하나로 내세운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근로자 1인당 월평균임금은 3백95달러로 독일
프랑스 등과 비교하면 20% 수준이다.

하지만 헝가리 근로자들은 주어진 일만 충실히 수행하지 다른 라인의
일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

라인간 분업의 고리가 단절된 까닭에 전체 1인당 생산성은 선진기업들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빈경제연구소가 최근 유럽각국 근로자들의 1인당 생산성을 조사해본
결과 오스트리아 근로자의 생산성을 1백으로 기준하면 헝가리 근로자들은
40정도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생산현장 뿐만 아니라 시장이나 상거래관행에 있어서도 자본주의원리가
아직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다.

담배 1갑에 10달러라면 10갑을 사면 1백10달러를 줘야하는 경우가 있고
동일상품에 대해 같은 상가에서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실물경제가 앞서가는 제도를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부조화는 하나둘이
아니다.

헝가리 상인들은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포피르(서류) 뿐"이라며
상습적으로 이중장부기재를 요구한다.

정부공식추계로 세원포착이 어려운 암시장규모가 GDP의 30%선에 이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헝가리인들은 예로부터 뛰어난 상술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따라 시장경제도입이후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무역업체가
94년말 현재 무려 2만5천여개.

그러나 대부분 운영자금이 부족하고 자본주의 거래방식에도 익숙지 않아
수출입결제시 외상거래나 인도지급 조건(COD)거래를 선호한다.

이런 어두운 요소들이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헝가리는 서방기업들에
여전히 개척유망지역으로 꼽힌다.

현지진출로 일찍부터 시장경제이행에 동참한 우리기업들의 활약상을
봐도 헝가리는 전략적 요충지임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기존 공기업을 인수하지 않고 직접 공장을 세워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렸다"는게 삼성전자 헝가리현지법인장
이만식부장의 얘기다.

삼성전자 헝가리현지공장은 지난 90년부터 94년까지 내수시장에서는
19%의 매출증가율을 기록했으나 수출은 연평균 1백11%의 신장세를 보였다.

우회수출기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한 예다.

헝가리 투자유치청의 길리언 차바국장은 한국과 헝가리기업에 상호이익을
줄수 있는 분야에 대해 "자동차부품 식품가공 제약 화학 관광서비스업
등에서는 합작투자가 유망하고 소프트웨어산업과 생화학분야에서는
헝가리의 높은 연구개발력을 한국기업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할 경우
높은 수익을 가져다줄것"이라고 장담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