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영기업 도이치텔레콤은 미국 AT&T와 일본전신전화(NTT)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통신회사.

종업원이 21만명이나 되며 지난해 매출은 한국 1년 예산의 절반수준인
612억마르크(33조원)에 달했다.

이 거대기업이 지금 어느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98년으로 예정된 통신시장 개방이 임박했는데도 아직도 경쟁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점 국영기업체제에 안주해온 탓에 시장개방 자체가 두려운게 사실이다.

게다가 회사의 재무구조도 허약하다.

90년 독일 통일이후 동독지역에 400억마르크를 투자하는 바람에 4년 연속
순익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 회사의 생존전략은 한마디로 국제화 민영화 합리화이다.

통신시장이 개방돼 "안방"이 침범당할 때를 대비해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해졌다.

투자자금을 조달한다는 의미에서 민영화도 중요하다.

도이치텔레콤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미국 통신회사들이다.

미국 최대의 장거리전화회사인 AT&T는 유럽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이미
스페인 스위스 네덜란드 스웨덴 통신회사들과 손잡고 합작회사 "뉴월드"를
세웠다.

2위 장거리전화회사인 MCI도 영국 통신회사 브리티시텔레콤(BT)과 공동으로
"콘서트"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 합작회사는 작년부터 다국적기업을 상대로 통신서비스를 시작했으며
벌써 2,000여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해 놓았다.

이들이 독일시장을 공략할 날도 멀지 않았다.

국내 신규업체들에 틈새시장을 잠식당하는 마당에 주고객을 외국업체들에
빼앗긴다면 치명타가 된다.

도이치텔레콤은 이같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제컨소시엄을 구성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 회사는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프랑스의 프랑스텔레콤과 연합전선을
펼치기로 하고 지난달 유럽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합작회사 "애틀라스"를
세웠다.

또 이 "애틀라스"를 통해 미국 3위의 장거리전화회사인 스프린트와 손잡고
국제통신서비스업체 "피닉스"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도이치텔레콤은 프랑스텔레콤 스프린트와 제휴함으로써 유럽시장에서 AT&T
를 주축으로 하는 "뉴월드" 및 MCI-BT 연합군에 강력히 맞서고 세계최대의
통신시장인 미국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문제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승인이다.

AT&T는 독일과 프랑스의 통신시장이 충분히 개방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내걸고 "휘닉스"를 승인해서는 안된다고 FCC측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도이치텔레콤은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시장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곳에는 이미 AT&T가 NTT와 손잡고 막강한 교두보를 구축해 놓았다.

이들과 맞서기 위해 도이치텔레콤-프랑스텔레콤 연합이 일본의 DDI
(제이전전)와 손잡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이처럼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멀티미디어와 같은 신사업을 본격화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도이치텔레콤은 기업공개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일단 96년말께 프랑크푸르트증시에 주식을 상장키로 했다.

나아가 기업이미지도 제고할겸 해외증시에도 주식을 상장할 예정이다.

도이치텔레콤으로서는 독점 국영기업체질을 바꾸는 일도 시급하다.

현재 21만여명인 종업원을 2000년까지 17만명으로 줄이기로 한 것은 체질을
개선하지 않고는 경쟁력을 강화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제네바에서 "텔레콤 95"라는 통신전시회가 열렸을 때 MCI-BT 연합인
"콘서트"는 레만호에 배를 띄우고 고객들을 접대했다.

한발 늦게서야 국제경쟁에 나선 도이치텔레콤 경영진은 이 모습을 보고
"피닉스" 프로젝트를 서두를 필요성을 절감했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