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스트리트와 워싱턴에서는 미국의 CIA(미중앙정보국)가 흔란에 빠진
일본의 금융계에 개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일본의 금융계가 흔들리면 그 파장이 전 세계에까지 미칠 것이고 특히
일본의존도가 높은 태평양국가들이 받을 타격 또한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는 수십억달러를 희생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재무부도 여기에는 같은 생각인 것같다.

그렇다면 일본의 대장성과 은행가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한다고 할때 미국이
과연 스파이장비를 동원할 것인가.

딱히 말할수는 없지만 첩보활동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대부분이 판단
하고 있다.

관리들 조차도 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렇찮아도 미국과 일본은 여러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불편한 관계에 빠져
있다.

지난2월 미.일 자동차협상때 CIA가 일본측의 대화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나라 관계는 더욱 미묘해지고 있다.

불과 며칠전에는 뉴욕에 주재하고 있는 일본무역진흥공사(JETRO)를 FBI
(미연방수사국)가 수시로 도청하고 있다고 폭로되기도 했다.

또 CIA가 프랑스에서 첩보활동중 산업기밀을 빼냈다는 혐의로 얼마전
지부장과 요원들이 추방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는 바야흐로 포성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냉전시대의 종식으로 국가위상이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판가름나면서
경제첩보전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미국의 첩보활동은 새삼스러운게 아니다.

지난 40년동안 CIA는 구 소련의 경제능력을 분석했었고 지난해에는 멕시코
의 재정능력을 평가하기도 했었다.

워렌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 얼마전 <우리 외교정책에서 경제적이득은
가장 높은 순위에 있다>고 밝혔듯이 CIA의 경제첩보활동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상무부도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외국기업들의 적극 공세때문에
올들어서만도 3백60억달러에 이르는 수주를 놓쳤다고 밝혔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CIA에 새로운 명분을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CIA의 활동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지난9월 워싱턴에서
자동차협상을 벌였다.

첨예하게 대립된 이 협상에서 우리가 미국의 도청에 안전했는가 하는
의문에 <아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울것 같다.

홍재형부총리는 암호전문을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지만 이에 대해 미국 변호사들은 한마디로 냉소적이다.

이 정도의 암호해독은 별것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암호는 최소한 미국과 일본앞에서는 무방비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실권을 부여받지 못한 우리 실무대표단이 호텔에서 전화나 팩스를
이용했을 경우 이는 적진에서 우리의 작전계획을 다 보여준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유선, 무선을 막론하고 1백% 도청이 가능하다는건 미국사회에선 상식이다.

최근 일본이나 프랑스의 예를 보면서 우리의 통신보안을 한번쯤 되돌아
봐야할 것같다.

<이익이 있는 곳에 도청이 있다>는 평범한 교훈이 결코 빈말은 아니라는
예가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기 전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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