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최대의 타이어업체 피렐리의 최고경영자(CEO)마르코 트론체티
(47)는 말수가 적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이탈리아사람은 다혈질"이란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이들은 그가
이탈리아사람이 아닐 것이라고도 말한다.

오랜 친구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키를 잡을수 없을 만큼 거친 폭풍우를 만나도 겁을
내 떨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고 신중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냉혹할 정도로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의 경영능력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의심받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산업을 부흥시킬수 있는 젊은 경영자의 대표주자로 그를
꼽는데 주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영악화로 크게 흔들리던 피렐리를 지난 3년간 알짜배기 회사로
회생시키는데 그의 몫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가 피렐리에 발을 들여놓은 때는 지난 78년.

레오폴드 피렐리회장의 딸 세실리아 피렐리와 백년가약을 맺고부터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밀라노의 보코니대학에서 MBA과정을 마친 그는
곧바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훗날 부인 세실리아와 이혼할 정도로 가정생활은 순탄치 않았지만 경영
수완만큼은 남달랐다.

91년에는 재무.관리담당 전무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 회사경영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못됐다.

레오폴드회장의 확대경영이 좌초하면서 적자가 쌓여갔다.

선두업체인 프랑스의 미셰린, 일본의 브리지스톤과의 격차는 커져만 갔다.

주주들은 레오폴드회장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회사를 살릴 적임자로 그를 CEO에 앉히고 비주력사업부문의 과감한
가지치기를 요구했다.

그는 소수정예의 회사재건팀을 구성, 60~70년대 사들였던 10여개의 회사를
매각하는 등 감량경영에 총력을 기울여 25억달러에 달했던 부채를 절반이상
갚아 버렸다.

유휴인력도 과감히 정리, 전체종업원의 25%를 감원했다.

대신 주력사업인 타이어와 케이블사업부문에 투자를 집중했다.

그의 경영능력에 대한 주주들의 기대는 적중했다.

지난 5년간 적자를 면치못했던 타이어사업부문에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회사전체 수익도 93년부터 흑자로 반전됐다.

올 상반기 순익은 7,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배나 늘었으며
매출도 35억달러로 20%나 신장했다.

힘을 한데로 모아야만 돈을 벌수 있다는 자신의 경영철학이 옳았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제야 방향을 제대로 잡았습니다.

타이어사업부문이 흔들리는 일은 이제 없을 겁니다.

이를 기반으로 유럽전체 타이어시장에서 25%를 점유하고 있는 고가 고품질
타이어시장공략에 주력, 이윤을 극대화할 생각입니다.

피렐리는 유럽타이어시장에서 점유율 12%로 프랑스의 미셰린에 뒤지지만
고가타이어시장에서 만큼은 선두자리를 유지하고 있지요.

아시아지역시장에서의 타이어사업도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그는 또 회사매출의 절반을 거둬들이고 있는 케이블사업부문을 통신그룹
으로 키운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케이블사업부문은 이미 세계최대 광케이블 공급업체인 알카텔 알스톰과
어깨를 견줄만한 수준에 올라있다.

타이어와 케이블사업을 2개축으로한 "집중경영"을 내세우고 있는 그가
앞으로 피렐리를 어떤 모습으로 키워갈지 주목된다.

< 김재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