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 꽤 유명한 잡지사의 기자들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일본에 들어와 두드러지게 활약하면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기업과
상품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요즘 한국기업과 상품이 밀려오면서 일본기업들사이에 두려움이 커지고
있는만큼 이와 관련된 특집기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기업과 상품은 없다는 기자의 간단한 대답에 그들은 놀라고
말았다.

굳이 찾자면 세계적으로 물량부족상태인 반도체수출이 좀 늘고 있고 몇개의
일본 중소기업을 사들인 정도라고 애기해 주었다.

자신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대답과 함께 "당신들이 직접 본 한국상품이
있다면 이름을 들어보라"는 역질문에 그들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잡지는 결국 "한국으로부터 반도체패권을 지키자"는 내용의 기획기사를
쓰는 선에 그치고 말았다.

이일은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최근 일본의 한국경계심리는 정말 지나칠 정도다.

삼성 포철 대우등이 일본에서 중소업체들을 몇개 사들였지만 예외없이
일본에서 1면톱기사등 중요한 비중을 갖는 기사로 다뤄졌다.

물론 뉴스가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미미한 시장영향력에 비해 커도 너무
크게 다뤄졌다.

포철이 자동차용강판을 일부 수출하기 시작했을때도 실제 사용되는 것은
극소량에 불과한데도 마치 포철때문에 일본철강업체들이 당장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기사를 써댔다.

뿐만아니라 일부기업이 자체사옥을 매입했을 때도 한국기업의 부동산투자
열풍이 일고 있는 것처럼 오도했다.

일본인들은 최근 한국기업들을 보면서 일본기업들이 미국에 물밀듯 밀려
들어갈 때의 상황을 연상하며 과대포장을 하고 있다.

한 일본기자는 "한국기업에 대한 기사를 쓰면 무조건 크게 받아들여진다"며
기사발굴경쟁이 붙은 분위기를 솔직히 전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천만에다.

한국기업들의 활동은 정말 부진하기 그지없고 이것저것 수입하기에 바쁘다.

오죽하면 연간 무역적자액이 1백억달러를 넘어서고 누계적자액이 1천억
달러를 돌파했겠는가.

일본인들의 속마음에는 한국기업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미리 차단해야 한다
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이 분명하다.

광복50년을 맞는 오늘 한국기업들앞에는 치밀한 견제 라는 또하나 넘어야할
일본의 벽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