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계간 포린 폴리시지 봄호에서 미외교정책의
근본원리로 네가지를 꼽았다.

"미국은 선도(LEAD)해야 한다"는 것이 그중 첫번째로 강조됐다.

나머지는 "강대국들과 생산적인 정치.경제적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협력
증진을 위한 항구적 기구를 건설한다" "미국의 이익과 이념을 위해 민주적
인권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4가지 원리 모두가 대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지만 나머지 3가지는 첫번째
원리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강하다.

미국의 외교정책는 결국 "선도해야 한다"는 단 한가지 원리에 의해 좌우
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면에서의 패권장악이 요체이다.

미국이 아직껏 선도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 이유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찾을수 있다.

미국은 구소련 붕괴이후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유일한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면에서의 자신감은 그리 확고한게 아니다.

2차대전직후 공산세력에 대한 방위벽을 쌓기 위해 대상국가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미국이지만 최근몇년새 경제적 자신감은 상당히
위축돼 있다.

연간 1천억달러가 넘는 무역적자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독일과 일본은 각산업부문에서 월등한 생산성과 기술력으로 미국의 아성을
뒤흔들고 있다.

일본자동차와 전자제품은 이미 세계적으로 최고품질을 인정받으며 곳곳에서
미국상품을 밀어내고 있다.

독일은 경치.경제적인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유럽대륙에서 경제적 패권을
거머쥘 태세이다.

게다가 한국의 LG전자가 최근 미대륙에 마지막 남은 TV업체인 제니스사를
통째로 삼켜버리는등 여타국가와 경제블록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자존심을 지탱해 왔던 정치 경제 군사의 세가지 축중 하나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등을 상대로 거칠기 그지 없는 시장개방
공세를 퍼붓고 있다.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93년3월 무역정책보고서에서 밝힌대로 통상법을
배경으로한 시장개방조치를 통해 무역확대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면에서의 지도력 약화는 이들 국가의 불공정 무역관행 탓이라는게
기본 시각이다.

경제적 패권장악을 위한 미국의 공세는 비단 구매력이 충분한 성숙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제적 도전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에 대한 공세는 더욱
거세다.

클린턴 행정부는 지난 93년 10대 급성장시장(BEMs)를 지정,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확대를 꾀해 오고 있다.

이들 국가의 무역및 투자규제현황을 낱낱이 파악, 시장개방압력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대통령 직속의 아태무역위원회도 설치해 놓고 있다.

최근에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회원국 모두를 BEMs에 포함시키는등 잠재
성장력이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한 전략수출지역을 확대해 가고 있는 추세
이다.

2005년 경제규모가 1조달러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ASEAN시장에 대한
관심을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는 특히 더하다.

중국은 최근 3년간 연율 10%이상의 고도성장률을 보이며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께 미국과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부상,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지도력을 빼앗아갈게 틀림없다.

중국은 더구나 이란과 파키스탄에 핵기술을 이전하고 남사군도의 지배권을
놓고도 인근 아시아국가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등 군사력으로도 미국과
맞상대하고 있다.

초강대국의 잠재력을 지닌 유일한 세력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최근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지렛대로한 미국의 대중전략은 중국의 이같은
도전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도 중국시장을
보다 빨리 개방토록 유도함으로써 중국의 성장잠재력을 미리 흡수한다는
생각이 함축돼 있다.

탈냉전 시대에 중국을 새로운 가상의 적으로 설정, 내외의 결속력을 다지고
이를 기반으로 압력의 강도를 높여 길을 들여놓겠다는 전략에 다름아니다.

중국이 너무 커버려 손을 쓸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쇄기를 박아
놓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행정부와 의회에서 중국은 적국이 될 수 있다거나 대중봉쇄전략 마저
걸러지지 않은 채 나오고 있는 것에서도 미국의 이같은 전략을 읽을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