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억9천만명에 풍부한 자원을 갖춘 인도네시아.값싼 저임금에
실업인구만도 3백만명에 달하고 있어 우리기업들이 진출하기에 최적의
여건을 겸비하고 있는 나라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시장의 이같은 여건들은 최근 들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임금상승률이 매년 20~30%씩 오르고 있는데다 물가상승률도 9%를
넘나들고 있다.

이에따라 인도네시아에 진출해있는 3백여개의 한국기업중 상당수가
현재 천정부지로 치닫고 있는 임금상승요인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이 모든 업종에 심각한 "악재요인"
으로 작용하고 있는것은 아니다.

예컨대 전자 기계등 고부가가치업체들의 경우 임금이 매년 큰 폭으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건 아니다(LG전자 한창규이사).임금이 올라봤자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전자공장 근로자 임금의 5분의 1정도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섬유 의류 완구 신발등 노동집약산업은 거의 "직격탄"을
맞은 식으로 "그로기"상태에 처해 있다.

저임금이 최대이점이어서 진출했는데 그 메리트가 해가 갈수록 빛을
잃으니 "결정타"를 맞는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셈이다.

80년대 후반 극심한 노사분규로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의 의류봉제업체
들은 89년부터 인도네시아로 "동반진출러시"를 이뤘다.

그런데 상황이 5년만에 1백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초부터 철수기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해 최근에는 철수자체가
"뉴스거리"가 안될정도로 악화된 것. 한마디로 한국에서 경쟁력을 잃은
"한계기업"들에 있어서 인도네시아 시장은 더이상 투자유망 대상국가가
아닌 셈이다.

이러한 사정도 모르고 이 나라에 뛰어들었다가는 2~3년후에 이윤은
커녕 투자자본도 날린채 철수할수 밖에 없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는
얘기다.

한국에서의 극심한 노사분규를 피해 이곳에 진출한 봉제업체들은 지난
89년에 "봉제협의회"란 친목단체를 구성했다.

이 협의회에 가입한 중소업체들은 지난해까지만해도 약90개사.

이들 업체들은 인도네시아정부가 제3국 수출을 목적으로 이 곳에 진출한
외국업체들을 위해 자카르타 근교에 조성한 "카와산" "탕그랑"등
공단지역에 대부분 입주해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약 10% 정도가 부지불식간에 인도네시아에서 철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진출시에는 득의양양했지만 철수때는 아무도 모르게 슬그머니 사라지는게
관례화 돼있을 정도다.

철수업체들은 중소기업만 있는게 아니다.

삼성물산을 비롯해 (주)쌍용 코오롱등 대기업들도 이미 철수를 했거나
철수를 준비중이다.

봉제업체들이 철수를 하거나 "울며 겨자먹는 식"으로 적자상태에서
공장을 가동할수밖에 없게 된 것은 근로자들의 최근5년간 임금인상률만
봐도 쉽게 드러난다.

한국업체들이 인도네시아로 "골드러시"를 이뤘던 지난88년 근로자들의
하루 최저임금은 7시간 근무기준으로 약 1천7백루피아(95년기준 1달러
=2천2백루피아)가 고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올 상반기중에는 4천6백루피아로 치솟았다.

미달러화로 환산하면 88년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월 평균임금이
30달러였으나 요즘에는 1백달러수준으로 3배이상 뛰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이들 업체들이 생산성 효율을 높이고 원가를 절감할수있는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봉제업체들의 원가부담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한국기업으로 지난91년 이곳에 진출한 "빈탕"사(현지법인명 빈탕부사
나자야)의 경우 종업원 1천8백명을 거느리고 연간 1천5백만달러의 매출
실적을 올리고 있는 중소기업.

우리나라의 마산수출자유공단에 해당하는 "카쿵"보세구역내에 있는
이 회사는 한국에서 수입한 원부자재를 토대로 이곳에서 캐주얼웨어를
비롯해 재킷 코트등을 생산, 세계3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원부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총매출의 75%에 달하고 있다.

원가부담을 줄이기 위해 현지의 원부자재를 사용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국제품에 비해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빈탕사의 정동진사장(50)은 "20%에 이르는 인건비와 부대비용을
빼고나면 남는게 총매출의 5%수준"이라며 "원가절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부대비용이 높은 것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외국업체들이 공통적으로
안고있는 문제점이다.

이곳에서 사업을 하려면 말단 공무원에서부터 고위층에 이르기까지
"뒷돈"을 줘야만 한다.

이러한 "언더테이블 머니"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게 한국업체들의
지적이다.

생산성 향상은 당분간 "기대난"이라는게 업체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K종합상사의 L부장(46)은 "한국의 근로자 30명이 한 봉제라인에서
하루평균 4백장의 옷을 만든다면 인도네시아 종업원들은 60명이 달려
들어도 하루에 고작 2백50장 이상을 생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현지근로자들의 생산성이 한국인의 65%정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저임금에 기초한 한국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데는 기업들
스스로의 안이한 자세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시각도 없진 않다.

대한무역진흥공사의 이강웅자카르타관장은 "현지근로자들의 임금은
주변 국가들과 비교해 볼때 아직까지는 경쟁력이 높은 편"이라며
"임금이 올랐다고 철새마냥 보다 싼 저노동국가로 이동하는 기업마인드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소업체인 G사의 김사장은 "현지기업과 합작형태로 진출한 업체들
가운데 한국에서 자재를 수입할 때와 현지 판매과정에서 이중으로 돈을
챙기다 적자가 나면 곧바로 철수하는 경우가 적지않다"고 밝혔다.

예컨대 한국에서 자재를 1백원에 구입했으면서도 합작사에는 1백5원으로
신고하고 판매할때도 똑같은 방식으로 이윤을 챙기다 나중에 현지기업들에
발각돼 합작이 깨지는 형태이다.

일정기간 "떡고물"만 챙기다 철수하는 전형적인 수법인 셈이다.

사실 인도네시아에서 철수한 기업들중 상당수는 인도나 방글라데시
미얀마 베트남등 보다 값싼 저임금이 보장되는 국가로 이전했다.

이러한 사례는 근본적으로 장기적인 안목이 결여된데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한국의 한계기업들이 인도네시아로 진출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진출하려면 노하우를 갖고있어야만 임금인상 물가상승등의
변수요인들이 발생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이곳 진출업체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의 강창순상무관은 "한국기업들은 지금까지
중소기업위주로 진출했지만 이제는 일본처럼 대기업들을 주축으로한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등 고부가가치업종이 뛰어들 시점"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