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OPEC(석유수출국기구)회담을 계기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런던시장에서 브렌트유 2개월후 인도물 시세는 불과 일주일전만해도
배럴당 18달러선에서 움직였으나 OPEC회담이 시작된 지난 19일 배럴당
63센트나 급락하더니 21일에도 48센트가 빠져 16.22달러에 종가를 형성,
5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같은 유가하락은 원유 증산을 둘러싼 OPEC 회원국들과 비회원국들간의
갈등이 심화된데 따른 것으로 앞으로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유가는 계속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9일과 20일 빈에서 열린 하계회담에서 OPEC는 비회원국들의 원유 증산이
유가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했으나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OPEC는 오는 11월 열리는 회담에서도 이에 대한 대책을 협의할 예정이나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OPEC는 지난 93년9월이후 회원국들의 산유량을 하루 2천4백52만배럴로
제한해왔는데 이후 늘어난 세계원유수요 2백만배럴 가운데 1백70만배럴
가량을 영국 노르웨이등 비회원국들이 차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세계 원유 수요가 하루약 6천5백70만배럴로
지난해보다 1백20만배럴 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증권의 에너지선물 수석분석가인
마이클 로스먼은 올해 비회원국들의 원유 공급이 1백23만배럴 증가, 수요
증가분을 이들이 독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회원국들은 OPEC가 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쿼터를 준수하는 동안 세계
석유수요증가에 맞춰 산유량을 늘림으로써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OPEC가 힘겹게 끌고가는 차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셈이다.

비회원국들의 세계원유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62%에 달했다.

OPEC가 38%의 시장점유율로 유가를 움직이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OPEC 회원국들이 이번 회담에서 비회원국들을 강력히 비난하고 나선 것은
이들의 위기감이 절정에 달했음을 의미한다.

OPEC회담이 시작된 지난19일 OPEC 신임의장으로 선임된 에르위 호세
아리에타 베네수엘라 석유장관이 비회원국들의 증산에 맞서 96년에는 OPEC
산유량 쿼터를 설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며
11월 회담에서는 산유량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돌았다.

OPEC가 이번 회담에서 비회원국들의 증산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자 한 서방관리는 올 하반기중 원유 공급이 수요를 초과, 브렌트유가
올 연말에는 15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는 올들어 지난 5월까지 오름세를 보이던 유가가 지난해말 수준으로
원상복귀함을 의미한다.

OPEC는 앞으로 비회원국들의 증산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금주말께 노르웨이를 방문, 원유 증산자제를
요청할 예정이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최근 산유량을 줄일 의사가 없다고 밝혀 협상이 어려울
것임을 예고했다.

영국 관리들도 "기업들이 원유를 생산하고 시장이 가격을 형성한다"고
언급, OPEC의 감산요청을 사실상 거북하고 있다.

러시아는 또 경제재건을 위해 구소련 붕괴 이전의 수준으로 산유량을
회복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유가가 예상대로 하락세를 지속할지 여부는 비회원국들과 유가및 산유량
등을 협의하게될 9월25일의 베네수엘라회의와 OPEC 회원국들의 내년도
증산문제를 다룰 11월21일의 OPEC회담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원유시장 전문가들은 11월 OPEC회담에서는 비회원국에 빼앗기고 있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회원국들이 증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OPEC이 내년 하루평균생산량을 2천6백만배럴이상으로
늘릴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쿠웨이트의 경우 현재 실제 산유량보다 하루 50만배럴을 증산할수 있는
생산시설을 갖고 있어 11월 회담에서 쿼터를 하루 20만배럴 가량 확대하려
하고 있다.

거액을 들여 하루 2백만배럴을 증산할 수 있는 시설에 투자해 온
사우디아라비아도 쿼터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노르웨이 러시아 등 OPEC 비회원국들이 감산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
은 매우 희박하다.

이에 맞서 OPEC가 시장점유율확대를 위해 증산을 택할 경우 내년도 유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 이창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