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경제는 디플레의 색채가 완연하다.

증가하거나 상승하는 것은 거의 없고 감소 또는 하락하는 것들 뿐이다.

경제전체가 깊은 수렁에 빠져있다.

최근 발표된 4월의 경제지표들을 살펴보자.

완전실업률은 3.2%를 기록 한달만에 0.2%포인트나 늘어났다.

호전되는가 싶던 광공업생산지수도 96.8에 그쳐 3개월만에 다시 하강세로
들어섰다.

대형소매점들의 판매액은 1.7%가 감소해 5개월연속 전년수준을 밑돌고
있다.

그나마 경기를 떠받치는 역할을 해오던 신설주택착공건수도 12만4천호에
그쳐 8.6% 줄어들었다.

2개월연속 감소세다.

도소매물가도 가격파괴의 영향으로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장기적추세로 봐도 이같은 상황은 마찬가지다.

닛케이평균주가는 2년여만에 1만5천엔선도 뚫고 내려가 89년말에 비해
60%이상 하락했다.

땅값도 버블때보다 40%이상 하락하는등 부동산시장도 침체의 늪이다.

한창때 1억5천만엔을 호가하던 고급골프장회원값역시 2천만엔수준까지
떨어졌다.

기업들의 매출도 줄고 있고 심지어는 근로자들의 실수입도 줄고 있다.

이들 경제분야는 서로가 서로의 뒷덜미를 잡는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

경기가 나쁘니 기업매출이 줄고 실업이 증가한다.

이는 수요를 위축시키고 경기는 더욱 악화된다.

게다가 초엔고와 주가및 부동산의 하락이란 자산디플레가 악순환을 더
심화시킨다.

최근들어 비교적 밝은 소식이라면 올해 설비투자가 전년보다 6.6% 증가할
것이란 통산성의 발표정도다.

그러나 이전망도 엔고가 본격화되기 전에 실시된 조사여서 실제로 증가할수
있을지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이와관련 산와종합연구소의 하라다 가즈아키이사장은 "현재 일본은 전후
경험한 적이 없는 디플레현상이 생겨나 장기화해 가려는 상황"이라고 진단
한다.

노무라연구소의 다카오 요시이치경제조사부장도 "엔고의 도래로 디플레
효과는 앞으로 더욱 본격화할 것이다. 금융불안과 엔고가 공명하는 국면이
나타날 것이다"고 분석한다.

일본이 디플레를 경험한 것은 소화불황(1930~31)때뿐이다.

이 2년간 소매물가는 25% 도매물가는 30%씩 하락했다.

제조업에서도 고용자수가 20% 줄어들고 임금수준도 13% 하락했다.

소화불황은 제1차세계대전후의 버블경기가 꺼지면서 장기침체국면이
이어진뒤 찾아왔다.

최근의 디플레가 결국 공황으로 이어지는 것아니냐는 우려가 늘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모든 경제상황이 당시와 너무도 닮아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것은 대략 3가지다.

첫째는 적극적인 공공투자를 통해 디플레갭(유효수요부족)을 메우는 것
둘째는 금융기관을 대수술하는 것 셋째는 개방과 규제완화를 실시하는 것
등이다.

수요확대를 위해서는 수도이전도 불사해야 한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일본이 이같은 상황에 처한 것은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문제가 일본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너무도 크기 때문
이다.

엔고나 버블경제가 태동한 것은 막대한 무역흑자에 주원인이 있다.

자국의 시장은 교묘히 폐쇄한채 세계의 돈을 긁어모았던데 따른 부작용이
경제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시장폐쇄성은 여타선진국들에 비해 외국기업들의 투자가 월등히
부족하다는데서 단적으로 입증된다.

일본으로 들어오는 외국기업들의 직접투자는 매년 불과 30억~40억달러에
그치고 있다.

미국은 이런투자규모가 4천억달러를 넘고 영국은 2천억달러 프랑스는
1천억달러 독일은 6백억달러선을 각각 나타내고 있다.

일본이 외국기업들이 영업을 하기에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있는지가 선명히
드러난다.

그런점에서 우시오 지로경제동우회대표간사의 이야기는 새겨둘만 하다.

"미국은 냉전시절 서방진영의 중핵시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재정
적자 무역적자는 그런 유산이다. 일본도 아시아태평양지역번영을 위한
중핵시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은 이제 일국
번영주의의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