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는 미국과 일본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까.

패자는 과연 그 판정을 수락할까.

WTO의 최종결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세계경제의 진로는 어디로
향할까.

미국의 대일무역보복리스트 발표에 맞대응,일본이 WTO에 제소함에 따라
WTO판정결과및 그에 따른 파장분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요코타 준 WTO주재 일본대표부 수석대표는 17일(현지시간) WTO본부에
60억달러규모의 일본산 고급승용차에 대해 일방적으로 1백%의 보복관세를
부과한 미국의 조치는 WTO규정에 위배돼 제소한다는 내용의 일본입장을
담은 문서를 제출했다.

요코타 대표는 또 WTO에 미일자동차관련분쟁을 긴급사안으로 다뤄줄 것을
요청했으며 WTO주재 미대표부를 방문,WTO주재하에 쌍무협상을 열것을 촉구
하는 문서를 전달했다.

이로써 미국의 일방적인 대일무역보복조치는 WTO분쟁해결절차에 따라
앞으로 9~13개월이내에 정당성여부가 판가름나게 됐다.

일본은 WTO에서의 싸움에서는 승리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미국의 대일무역보복리스트발표는 누가보더라도 "일방적인 조치"로 WTO
규정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WTO는 어느 회원국도 스스로 자국의 이익이 침해당했다는 일방적인판단을
내리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자국이익 침해사실에 대한 판단은 반드시 WTO의 분쟁해결기구에서만
하도록 정해놓고 있어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의 조치에 등을 돌릴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WTO에의 선제소를 공표한 미국도 자신에 차있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의 불공정무역관행을 걸고 넘어지면 얼마든지 동조세력을 규합할수
있다는 생각이다.

매년 막대한 무역흑자를 올리고 있는 일본의 폐쇄적인 무역관행을 시정
하라는 요구를 WTO회원국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통상전문가들은 "미국의 일방적인 무역제재조치"와 "일본의 불공정무역
관행"에 관해 각각 제소당사국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
하고 있다.

WTO의 결정이 어떻게 나든 미국과 일본이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다면
두나라 무역분쟁은 쉽게 풀릴수 있다.

당사국협의와 패널심리과정에서 밀고 당기는 치열한 싸움이 예상되지만
두나라가 WTO의 최종결정을 수락해 이행한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WTO가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WTO는 현재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다.

어느 한쪽 편을 들어줄수도 양다리를 걸칠수도 없는 형편이다.

미국과 일본은 WTO를 지탱해주는 두 기둥이기 때문이다.

애매모호한 판결을 내렸다가는 그대로 좌초할 가능성이 높다.

WTO관계자들이 당사국협의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이유이다.

더 큰 문제는 두나라 모두 WTO의 결정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지 않다는데
있다.

WTO가 분쟁해결절차와 설립정신을 살려 불편부당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패자가 받아들이지 않고 버틴다면 WTO자체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짙다.

특히 미국의 슈퍼301조에 의한 대일무역보복조치에 대한 부당성에 "이유
있다"는 결정이 내려지고 미국이 이를 수락치 않고 버틸 경우가 그러하다.

WTO는 분쟁해결기구의 결정이행을 거부하는 미국에 대해 회원국의 보복
조치를 허용하겠지만 과연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을수 있게끔 회원국들이
힘을 모을수 있느냐는 점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더구나 미국은 WTO탈퇴를 서둘러 결정할수 있다.

미의회는 앞으로 5년내 WTO에서 미국의 이익에반하는 결정이 3번 내려질
경우 WTO에서 탈퇴할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달아 WTO협정안을 비준했었다.

통상협상의 지렛대로 슈퍼301조의 존속을 주장하고 있는 미국은 2번의
불리한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독자노선을 걸을수 있다.

그렇게 되면 WTO체제는 와해될수 밖에 없다.

미국이 빠진 WTO는 더이상 존재의미를 찾을수 없다.

최악의 경우 세계무역체제는 개별국가의 협상력과 힘을 기초로 적자생존의
논리만이 득세하는 상황으로 귀착될수 있다.

자유무역정신의 토대가 무너지고 보호무역장벽만이 높아져 국가간 괴리감이
커질수 있다.

무역강대국을 정점으로한 새로운 세력권이 형성돼 대립할 가능성도 크다.

더 나아가 대규모 무역전쟁이 촉발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그러나 두나라 협상타결 가능성이 완전히 물건너간 것은 아니다.

두나라는 충분한 협상시한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의 무역보복조치가 실제로 적용된적도 없다.

두나라 고위관리들도 보복과 맞보복의 파국을 원치 않는다며 쌍무협상을
통한 문제해결 창구가 열려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다음달 15~17일 캐나다핼리팩스에서 열릴 선진7개국(G7)정상회담에서의
두나라 정상회담에 세계의시선이 쏠리고 있는 이유이다.

< 김재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