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6일 대일제재리스트를 발표함으로써 자동차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일본간의 무역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됐다.

물론 미국의 이번조치는 앞으로 한달동안 미국내에서 공청회를 거쳐야
확정되는 것으로 최종리스트는 아니다.

약60억달러에 이르는 제재대상규모도 미국내에서 공청회를 거치는동안
10억~15억달러선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이 조치가 일본에 주는 심리적 영향은 클 수 밖에 없다.

우선 이번에 발표된 보복관세율이 그대로 적용되면 일본산승용차의 경우
2.5%, 상용차의 경우 25%인 현행관세율이 1백%로 뛰고 이에따른 미국내
소매가격인상까지 감안한다면 더 이상 수출이 어렵게 된다.

지난해 미국에서 팔린 고급승용차(3만달러이상)의 판매대수는 총90만대다.

이 가운데 일본산승용차는 20만대로 시장점유율이 22.2%에 이르고 있다.

세계최대시장인 미국시장을 상실하면서 일본자동차업체가 버티기는 어렵다.

일본자동차회사들은 중급이하의 승용차는 주로 미국에서 현지생산을 하고
있지만 고급승용차의 경우 대부분 일본에서 만든 부품을 미국에 수출해
현지조립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이 중단되면 자동차산업은 물론 연관국내
산업마저 크게 흔들릴 소지가 있다.

지난 12일 도요타자동차회장이기도 한 도요타 쇼이치로 일본경단련회장이
무라야마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시장개방폭을 더 확대하라"고 촉구
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미국이 노리는 목표는 "미국의 단호한 입장을
과시하되 일본이 모양을 갖춰 양보할 수 있도록 한다는것"이라고 요약된다.

미키 캔터미무역대표부(USTR)대표와 론 브라운상무장관도 15일 기자회견
에서 "일본은 자유무역을 하려면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겉으로는 목소리
를 높였으나 당초 품목리스트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진 자동차부품을 대상
에서 제외시켰다.

이는 일본의 즉각적인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감안
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하시모토일본통산상도 미국의 발표에 앞서 기자들에게 "발표될 리스트는
짧다. 흥분할 일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고 미국의 한 고위관리도
"미일간의 전반적인 무역분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위해 대상품목을 고급
승용차 한 분야로 초점을 맞췄다"고 귀뜸했다.

"일본의 모양을 갖춰 주려는 의도"는 미국이 내심 노리고 있는 무역분쟁
타결시점과 괘를 같이한다.

그 기간은 다음달 15일부터 17일까지 캐나다에서 열리는 선진7개국 정상
회담(G7)과 일치한다.

클린턴대통령과 무라야마총리의 회동이 자연스럽게 이뤄질수 있기 때문
이다.

미키 캔터 대표가 지난 10일 보복조치를 발표하면서 리스트발표를 수일후로
미룬 것도 G7회의와 시점을 맞추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경제전문가들은 결국 일본이 무릎을 꿇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소재 경제전략연구소의 그레그 마스텔연구원은 "일본자동차회사들은
마침내 미국내 자동차시장을 상실하기보다는 미국부품을 더 사들이는 쪽을
선택할 것"이라며 "미국의 조치로 그들의 자동차산업이 입을 타격이 얼만큼
심각한 것인지 스스로 잘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김영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