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영섭 < 본사 논설위원 > ]]]


최근 일부에서는 국제통화체제의 장기적인 안정방안으로 달러 엔 마르크를
축으로 하는 3극통화체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지난해말 브레튼우즈 특별위원회가 제시한 목표환율대제도는 달러 엔
마르크만을 대상으로 하며 이 제도가 시행되면 마르크와 엔의 역할이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해진다는 점에서 3극통화체제의 단초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특정국가의 통화가 국제통화로 통용되려면 가치저장수단으로서
의 안전성과 신뢰성, 교환매개수단으로서의 수용성, 결제수단으로서의
이체성 등을 고루 갖춰야 한다.

어느 국가의 통화가 이런 성질을 갖추려면 세계경제를 주도하기에 충분한
생산력과 기술력을 갖춰야 하며 강한 군사력과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은 2차대전후 전세계 GDP의 50%, 금보유량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막강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달러가치를 순금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시킨
금환본위제를 유지했다.

그런데 50년대부터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와 금보유량 감소가 계속되면서
달러가치의 불안이 시작됐다.

결국 71년 미국이 달러의 금태환정지를 선언하면서 고정환율제도는
무너졌으며 73년부터 변동환율제로 이행됐다.

이후에도 미국의 경상수지적자는 누적됐고 달러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졌다.

그러나 아직은 달러를 대신할만한 마땅한 기축통화 후보는 없다.

따라서 3극통화체제 성립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불확실한 요인도
많다.

세계무역의 통화별 결제비중을 보면 달러가 25%, 마르크가 12.5%, 엔이
3.5%이며 외환거래의 통화별 비중은 달러가 42%, 마르크가 19%, 엔이 12%
이다.

마르크와 엔의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93년말 현재 세계 각국의 준비통화 구성비를 보면 달러가 61.4%,
마르크가 16.1%, 엔이 9.0%로 아직 달러가 압도적인 비중을 점하고 있다.

이처럼 마르크와 엔이 무역결제나 외환거래에 비해 준비통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자본유출입에 대한 규제가 심하고 금융기관의
해외영업기반이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는 등 일본과 독일의 금융시장이
미국에 비해 덜 국제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연합(EU)이 통화통합을 실현하고 독일경제가 통일 후유증에서
벗어나 유럽경제에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면 마르크의 국제화는 확고해질
전망이다.

또한 이번 엔고를 계기로 일본이 금융규제 완화, 수출입에서 엔화 결제
확대 등을 추진함에 따라 엔화의 국제화도 가속화될 것이다.

결국 3극통화체제의 성립은 독일 일본이 각각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주도권
을 행사하는 블록경제가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강력하게 형성되느냐
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유럽은 이미 상당한 경제통합을 이뤘으며 3단계로 통화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에서는 지난 90년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제안한
동아시아경제회의(EAEC)가 미국과 일부 아시아국가들의 반대로 무산되는 등
유럽에 비해 경제통합이 훨씬 부진하다.

특히 동아시아지역 경제통합이 진전되려면 무역체제가 일본에서 중간부품을
수입한뒤 미국에 완제품을 수출하는 기존의 수직분업구조에서 벗어나 유럽과
같이 수출입비중이 비슷한 수평분업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이같은 국제분업구조의 변화가 성공하려면 서구를 지향해온 일본의 전략이
아시아를 중시하는 "탈구입아"로 바뀌고 역내 생산품의 시장 역할을 맡아야
한다.

또한 동아시아지역의 최대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과 막강한 자본 및
기술력을 갖고 있는 일본이 전략적으로 제휴하느냐 여부도 중요한 변수이다.

블럭경제의 성립 가능성과 관련된 또하나의 관심사항은 초국적
(transnational) 기업이 국가권력의 신중상주의적인 보호무역 압력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점이다.

초국적기업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의 보다 긴밀한 상호의존에 주목하는
쪽은 블록경제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데 비해 블록경제를 국제무역불균형
과 국제통화체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보는 쪽은 전면적인
관리무역을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3극통화체제와 같은 과점게임(oligopolistic game)보다 단일 기축
통화체제가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점에서 래스터 서로 교수처럼 유럽
의 통화가 ECU(European Currency Unit)로 통합될 경우 기축통화가 현재의
달러에서 ECU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하는 학자도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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