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미쓰비시은행과 도쿄은행이 합병, 세계최대은행으로 부상하게 됐다.

두 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이 합병은 서로의 강점을 더해 수익성과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세계적인 슈퍼뱅크가 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 금융계의 혁명적 재편을 알리는 신호라는데 의의가 있다.

일본 은행들은 자산 규모상으로는 세계 10위권을 휩쓸고 있다.

그러나 수익성을 따져보면 인도나 방글라데시 은행들보다 나을게 없다.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부실채권이 워낙 커진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산업발전과는 대조적으로 금융산업이 낙후되어 있고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일본 은행들은 2차대전후 대장성을 중심으로 호송선단 형태를 취하며
성장했다.

어느 은행이 곤경에 빠지면 대장성은 "구명정"을 띄워 구해주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대장성만 바라볼 수는 없게 됐다.

지금 일본 금융업계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도시은행(시중은행).장기신용은행.신탁은행 등 은행업 3대 부문 21개 은행
의 부실채권만도 12조엔(1백조여원)에 달한다.

게다가 지난해 금리자유화가 마무리되면서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으며
기업들이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을 늘리면서 대출 위주의 사업으로는
더이상 수지를 맞추기 어렵게 됐다.

금융전문가들은 수년전부터 일본 금융계에서 인수.합병이 붐을 이룰
것이라고 예상해왔다.

경쟁력을 상실한 은행이 도태되거나 강한 은행에 먹히고 강한 은행은
서로 합병, 초대형 은행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예전에도 은행들이 난관에 처할때 대규모 합병이 성사된 사례는 많다.

71년에는 다이이치은행과 간쿄은행이 다이이치간쿄은행으로 합병했고
90년엔 미쓰이은행과 다이요고베은행이 합병, 지금의 사쿠라은행이 됐으며
91년에는 협화은행과 기옥은행이 협화기옥은행(지금의 아사히은행)으로
합병했다.

이 세 건의 합병은 주로 점포망.자산 등 규모를 키우는데 촛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28일 발표된 미쓰비시은행과 도쿄은행의 합병은 추구하는 바가
이와 다르다.

물론 자산규모로 일본 6위인 미쓰비시은행과 10위인 도쿄은행이 합병하면
총자산이 72조6천5백억엔(약6백25조원)에 달하는 세계최대은행이 된다.

이 자산은 미국 최대은행인 시티뱅크의 5배에 달한다.

그러나 두 은행이 합병키로 한 것은 단순히 규모를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결합함으로써 경쟁력을 갖춘 유니버셜뱅크로 도약하기
위해서이다.

미쓰비시은행은 국내에 거대한 영업망을 갖고 있는 반면 외환전문은행으로
출발한 도쿄은행은 해외영업에 강하다.

또 미쓰비시가 기업을 상대로 하는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비해
도쿄은행은 금융파생상품 거래 등 금융첨단기법에서 앞서가고 있다.

일본 금융계가 두 은행의 합병소식에 놀라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부실채권비율이 낮은 두 우량기업이 합병, 강점을 합치고 나면 매우 힘겨운
상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질과 양에서 슈퍼뱅크가 될 "도쿄미쓰비시은행"과 경쟁하기 위해선
다른 은행들도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적 인수.합병을 모색하지 않을수
없게 됐다.

미국에서도 80년대말부터 90년대초에 걸쳐 금융산업 개편이 활발히 추진
됐다.

불황에 처하면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케미컬뱅크와 매뉴팩처러스-
하노버은행이 합병했고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지방은행에 불과했던 네이션스
뱅크는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자산규모기준으로 미국 3위 은행이 됐다.

이같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미국 은행들은 경쟁력을 키웠으며 이제는
세계시장을 향해 진출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금융산업 개편붐이 지금 일본에서도 불어닥치고 있다.

일본 시중은행의 한 간부는 "은행 경영자로서 인수.합병을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는 말로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해 주었다.

일본 금융계는 두 은행의 합병이 일본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촉진제
로 보고 있다.

과도한 규제로 금융산업 공동화가 우려되고 금융 개방화.국제화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