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과 마르크가 달러를 밀어내고 국제기축통화로 부상할수 있을까.

1차대전후 달러에 기축통화자리를 내준 파운드화의 운명이 달러에도
나타날 것인가.

최근 달러가치가 크게 떨어지자 세계의 관심은 이 의문에 쏠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다.

엔과 마르크의 세력이 점증하기는 하겠지만 달러대신 "세계통화의 황제"
자리를 차지할 만큼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물론 지난 20여년간 달러위상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일본과 독일경제력이 커지고 언제까지나 흑자를 낼것 같던 미무역수지가
일.독수출에 밀려 적자로 반전되자 달러의 기축통화위치는 적잖이 약화됐다.

기축통화여부를 재는데 가장 중요한 척도인 세계외환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달러비중은 93년말현재 61.4%로 지난 75년의 79.4%에 비해 크게 줄었다.

이에 반해 마르크와 엔비중은 각각 16.1%(75년 6.3%), 9%(0.5%)로
늘어났다.

이처럼 달러비중이 낮아지고 마르크가 올들어 국제자본의 위험도피처가
되고 있는데도 마르크나 엔은 왜 기축통화로 부상할수 없는가.

여기에는 크게 세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이 경제력에서 세계최대이고 금융시장의 규모와 개방에서도
독일과 일본을 크게 능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독경제가 커졌다고는 하나 아직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6조달러)의
60%, 30%밖에 안된다.

주식과 채권등 금융시장규모에서는 미국이 두나라를 합친것보다 훨씬 더
크다.

금융시장개방에선 일본은 "사실상 폐쇄"돼 있고 독일역시 미국에 비해
문이 많이 닫혀 있다.

한나라의 통화가 명실상부한 기축통화가 되려면 금융시장이 규모도 커야
하고 또 완전히 개방돼 국제자금이 자유로이 오갈수 있어야 한다.

이점에서 일본과 독일은 미국에 한참 뒤쳐져 있다.

두번째 이유는 독일과 일본이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책임을 수행할 자세를
갖고 있지 않은 점이다.

기축통화국은 국제사회에서 짊어져야할 짐이 있다.

세계경제전체를 감안한 금융정책을 펼쳐야 하고 무역적자도 감수해야
한다.

자국화폐의 국제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취해서도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자본투자이득세를 올리지 말아야 한다.

세계각국중 이같은 책임을 떠맡고 있는 나라는 아직까지 미국 하나 정도다.

독일과 일본은 국내경제사정을 감안한 정책들에 치중하고 있다.

독일 경우 마르크강세때문에 유럽환율안정장치(ERM)가 붕괴될 위험에
처했는데도 국내인플레만을 생각, 금리를 내리지 않고 있다.

일본은 세계경제 전체를 위해 무역적자국이 돼보겠다는 희생정신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두나라가 미국을 대신해 기축통화국이 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음을
보여주는 실례들이다.

세째는 미국이 기축통화국으로서 부담도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잇점도
많아 굳이 기축통화국자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막대한 무역적자를 내고는 있지만 달러가 기축통화인 탓에 해외로 나간
달러중 절반이상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외국정부와 기업들이 미주식과 채권을 사거나 부동산을 사려고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따라 미정부는 재정적자를 메꾸는데 필요한 외국자본을 저금리에서도
어렵지 않게 끌어들이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아니라면 미국은 금리를 높게 만들어야 재정적자보전에
필요한 외국자금을 유치할수 있다.

금리가 높아지면 그만큼 미정부의 외자유치비용은 늘어난다.

재정적자로 인한 미정부의 부채는 현재 약 5조달러에 이른다.

금리를 1%포인트만 올려도 연간 이자부담이 5백억달러나 늘어나는 것이다.

달러가 앞으로도 상당기간동안 기축통화자리를 잃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뒷받침해 주는 사실은 또 있다.

현재 달러현금의 유통잔액은 총 3천6백억달러인데 이중 3분의 2인 2천
4백억달러가 미국바깥에서 유통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달러를 얼마나 선호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할때 달러는 앞으로 최소한 한세대동안은 세계통화의
제왕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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