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링은행 금융사고로 세계가 들끓기 시작한 27일. 싱가포르 오차드가
아파트 5층에 있는 문제의 딜러 닉 리슨의 집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그가 허겁지겁 집을 빠져나간 흔적은 역력했다.

베란다 빨랫줄엔 셔츠가 널려 있었고 아파트 문간에는 신문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24일(금요일)자 신문들 위에는 베어링은행이 주가지수선물거래로
8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는 기사가 실린 27일(월요일)자 신문도 놓여 있었다.

리슨은 목요일인 23일 오전 오신타워 24층 딜링룸에 있는 자신의 데스크를
서성거렸다.

이날 오후 그는 23세의 부인 리자와 함께 잠적, 25일 어딘가에서 쓸쓸하게
28번째 생일을 보내야 했다.

베어링 본사가 사고를 알아챈 것은 24일 리슨이 잠적하기 직전이었다.

런던 본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임원들을 싱가포르에 급파하는
한편 이튿날 영국 중앙은행에 구제를 요청했다.

스키를 즐기러 휴양지로 떠난 에디 조지 총재는 프랑스 아보리아즈에
도착한 직후 사고 소식을 전해듣고 서둘러 런던으로 돌아왔다.

리슨은 베어링의 싱가포르 현지법인에서 주로 주가지수선물 재정거래를
맡았다.

닛케이225 주가지수선물이 상장된 싱가포르금융거래소(SIMEX)와 오사카
(대판)증시간에 발생하는 가격차이를 따먹는 일을 맡은 것이다.

리슨이 이 일만 했더라면 이번 사고는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리슨은 무슨 생각에서 인지 주가지수선물 장외거래에 뛰어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대규모 주문을 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신(판신)대지진후 일본 경제 전망을 잘못해 발생한 조그만 손실을
막기 위해 매수를 늘리는 과정에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말았다.

거래 규모는 무려 2백70억달러(12조원). 리슨은 이런 엄청난 도박을
걸어놓고 도쿄 주가가 오르기만 애태워 기다렸다.

그러나 주가는 끝내 오르지 않았다.

조지 총재는 문제가 된 베어링의 거래가 주로 장외(OTC)시장에서 이뤄져
본사와 SIMEX가 문제를 눈치채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또 리슨이 이마가 벗겨져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28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경험이 부족한 딜러가 사태악화를 막기 위해 혼자 끙끙대는 동안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게 베어링을 파산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