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에 지친 샐러리맨이 응접실 안마의자에 앉으며 헬맷과 안경을 합친
것처럼 생긴 HMD를 머리에 쓴다.

곧이어 눈앞에 입체영상의 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푸른 풀밭은 산들바람에 일렁이고 하늘엔 뭉게구름이 떠 있다.

HMD에서는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30분 가량 누워있으면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 것처럼 가뿐해진다.

이상은 일본 마쓰시타덴꼬(송하전공)가 가상현실(VR)기술을 이용, 안마의자
(상품명 "모미모미")를 개발한뒤 최근 자랑삼아 늘어놓은 설명이다.

이 설명에는 다소 과장이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마쓰시타의 안마의자는 지금까지 주로 전자게임에나 적용되고 있는
VR기술이 일상생활에 깊숙히 파고들 수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VR기술은 냉전시대에 전투기 조정훈련 등에 활용하기 위해 개발됐다.

그러나 요즘엔 게임.입체영화.시뮬레이션 등으로 활용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가스에서 열린 동계가전제품전시회에는 4개의
미국업체들이 텔레비젼이나 개인용컴퓨터로 입체영화를 감상하게 해주는
가정용 HMD를 출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버츄얼 i-O라는 업체는 안경처럼 생긴 "아이글라스"를, 포르테사는 헬맷
모양의 "VFX1"을 내놓았다.

또 빅터막스는 "싸이버막스"를, 버츄얼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스는 "세븐쓰
센스"라는 HMD(헤드마운티드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

HMD를 쓰면 마치 10m 전방에 있는 대형 텔레비젼 화면으로 입체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생생한 느낌을 받는다.

가령 화면속의 주인공이 자동차경주를 벌이면 HMD를 쓴 사람은 경주자가
된다.

화면은 경주자의 진행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경주자가 커브를 돌면 게임자는 몸이 기우는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방안에 앉아 자동차경주의 짜릿한 쾌감을 맛볼 수 있다.

미국업체들은 전자게임 분야에서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일본 전자업체들도
HMD에서만은 당분간 미국을 추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러나 일본업체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들은 요즘 전자게임에 VR기술을 결합, 가상현실 테마파크를 세우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가상현실 테마파크의 선두주자는 게임기업체인 세가이다.

세가는 지난해 7월 요꼬하마(횡빈)에 죠이폴리스라는 가상현실 테마파크를
세웠다.

이 놀이공간에서는 가상현실 입체화면을 보며 쌍방향 전자게임을 즐길 수
있다.

가령 "고스트헌터스"라는 게임에서는 카트를 타고 다니면서 레이저총으로
유령과 싸움을 벌인다.

뚜렷한 컬러 입체영상, 주인공(또는 게임자)의 시각에 따라 변하는 배경
화면은 게임자를 순식간에 소름끼치는 유령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게임자는 진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월까지 죠이폴리스 찾은 손님은 60만명. 연간 1백20만명을 동원
하겠다는 목표는 무난히 달성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고무돼 세가는 영국 버포드사와 손잡고 내년 여름까지 런던 중심가에
"세가월드"라는 가상현실 테마파크를 세우기로 했다.

VR기술은 자동차 설계라든지 중장비 운전연습.가구 배치 시뮬레이션등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마쓰시타덴꼬의 경우 도쿄(동경).요꼬하마.오사카(대판)에 있는 쇼룸에
"주택공간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수주율(접촉한 고객중 계약을
체결한 비율)을 2배 수준으로 높였다.

이 회사의 VR팀징인 노무라(야촌)씨는 "VR기술을 민수분야에 활용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