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의 젊은 딜러가 저지른 한순간의 실수로 2백33년의 긴 역사를 자랑해온
영국 최고의 투자은행이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영국 베어링스은행은 싱가포르 현지법인의 닉 리슨이라는 딜러가
닛케이225주가지수선물에서 5억파운드(7억9천만달러)의 평가손을 내자 지난주
영국정부에 관리를 의뢰하는 한편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국은행은 26일 조지 에디 총재를 반장으로 하는 비상
대책반을 구성하고 언스트&영을 관리회사로 지정했다.

영국은행은 각국 은행들과 베어링스 구제방안도 협의했으나 이들은
베어링스의 거래 포지션이 오픈되어 있어 손실이 커질 수 있다며 포지션
인수를 거부했다.

영국은행은 베어링스의 자산을 인수하는 기업에는 자금제공 혜택을 주기로
했다.

영국 언론들은 이번 금융사고가 영국으로서는 11년만의 최대사고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면에서는 과거 어느 사고보다
중대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80년대말부터 금융파생상품에서 명성을 떨치던 베어링스가 한순간에
파산위기에 처한 것은 주가지수선물과 관련한 지나친 투기를 했기 때문이다.

과감한 베팅으로 유명한 닉 리슨은 지난 1월17일 한신(판신)대지진
발생직후 지진 복구사업으로 일본경제 회복이 오히려 촉진될 것으로 판단,
싱가포르국제금융거래소(SIMEX)와 오사카(대판)증시에서 닛케이225주가지수
선물을 대거 사들였다.

그러나 리슨의 예상과는 반대로 지진 발생 당일 1만9천3백50이던
닛케이평균주가는 하락세를 지속, 베어링이 파산보호를 신청한 지난 24일
1만7천4백73으로 떨어졌다.

SIMEX의 딜러들은 리슨이 한달간 1만5천-2만매의 주가지수선물을 매입,
건당 수만달러를 잃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베어링스가 투기성이 농후한 대규모 오픈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데도
SIMEX가 규제를 하지 않았다는게 이상하다고 말한다.

베어링스의 거래손실이 보도되자 SIMEX와 오사카(대판)증시는 27일
베어링스의 거래를 무기한 정지시켰다.

또 일본과 싱가포르 증권당국은 주가폭락이 지속될 경우에 대비, 증거금
인상등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베어링의 금융사고가 도쿄.런던및 동남아 증시에 대형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도쿄증시에서는는 3월말 결산기를 앞두고 기업들의 매물이 쏟아지고
일반투자가들 마저 매도에 가세하고 있는 터에 사고가 터져 당분간
주가폭락이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도쿄 주가가 급락하면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강세가 꺾일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유럽시장에서는 런던 주가가 급락하면서 금주중 영국 파운드화가 독일
마르크화에 대해 사상최저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파운드화는 마르크화에 대해 지난 24일 뉴욕외환시장에서 파운드당
2.3220마르크로 폐장, 사상최저치 2.3147마르크에 바짝 접근했다.

마르크화 강세는 유럽외환시장을 혼란에 빠뜨릴 가능성을 안고 있다.

금속노련이 임금 6%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함에 따라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가 인플레 예방을 위해 금리를 올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파운드화가 폭락하면 이탈리아 리라화등
유럽 약세통화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유럽 약세통화국들이 자국통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
모처럼 맞은 유럽의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된다.

베어링스의 이번 금융사고는 파생상품 거래에 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융파생상품시장 개설을 추진중인 아시아 개도국들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국 야당인 노동당은 26일 장외시장을 통한 금융파생상품 거래에 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제결제은행(BIS)도 26일 장외(OTC)시장의 금융파생상품거래에 관한
정보가 매우 미흡하다면서 각국 중앙은행이 정보수집활동을 대폭 강화해
분기나 반기마다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베어링스는 1890년에도 파산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아르헨티나 등에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 화근이 됐으며 영국은행의
구제로 위기를 모면했다.

베어링스는 1백여년만에 다시 영국은행에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도 영국은행은 베어링스를 구원할 수 있을까.

<김광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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