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뤼셀=김영규특파원 ]새해들어 유럽에도 가격파괴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일반식료품에서 정보통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가격의 급격한
인하 양상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컴(BT)은 지난주 미국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대서양
전화요금을 고객별로 20~22% 인하, 오는 2월1일부터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3분당 2.38달러하는 대서양간 전화료를 1.85달러(1천5백원) 수준으로
대폭 인하하겠다는 얘기다.

지난해도 2차에 걸쳐 대서양 전화요금인하,가격경쟁에 불을 댕긴 BT는
연초부터 또다시 가격인하를 선도하며 시장선점 작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따라 영국의 머큐리 커뮤니케이션등 여타 통신업체들도 서둘러 가격을
인하할 움직임을 보이는등 대서양 장거리전화료의 기존가격이 급격히 파괴
되고 있다.

BT사는 그러나 다른 업체와는 달리 가격파괴에도 불구, 영업수지는 오히려
개선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가격인하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추진되기 때문이다.

유럽 정보통신업체중 유일하게 10년전부터 민영화를 추진, 국제경쟁력을
키워온 이 회사는 지난해 미국 MCI와 "컨서트"란 합작전화사를 세운데
이어 금년초는 독일 비아그사와 합작사 설립을 발표, 유럽업계는 물론 세계
최대 통신업체인 미국 AT&T를 긴장시킬 정도로 급성장했다.

BT측은 따라서 가격인하로 연간 2천2백달러의 수입감소가 발생할 것이나
이로인한 매출액 급증으로 올수익은 2배가 넘는 4천5백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이를 반영 올 유럽증시에서 BT주는 장셀 주도할 최대관심종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네덜란드계 유통업체인 마크로도 가격파괴에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소매업의 도매화"를 상술로 내세운 이 유통체인은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소매업체와 다를바 없다.

그러나 식품의 경우 낱개판매를 지양하는 대신 마크로회원에 대해서는
평균 15%이상 할인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복잡한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로부터 직접 물건을 구입, 싼값에
판매가 가능한데다 대량구매를 원하는 소비자를 대상, 가격할인으로 인한
수입감소분을 매출증가로 충분히 만회하고 있다는게 이곳 관계자의 설명
이다.

재고처리등을 하면서도 "기업이익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란 거창한 이유를
내세워 가격인하에 나서는 얄팍한 상술이 아니라 유통단계를 단순화,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넘겨주고 있는 것이다.

벨기에등 유럽은 물론 미국등 세계 곳곳에 1백20개 체인점을 갖고있는
마크로는 올해 아시아에도 본격 진출, 가격파괴 전쟁을 개시할 계획이다.

이를위해 한국 중국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등지에 체인점 설립을
서두르고 있으며 필리핀 인도등지는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회원확대로 인한 신규가입국에서 일고 있는 특정제품의
가격파괴 조짐도 눈여겨 볼만한 변화이다.

금년초 EU에 가세한 오스트리아국민들은 값싼 농산물이 인근국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와 가격파괴 현상을 절감하고 있다.

수퍼마켓들간 농산물 가격인하경쟁이 벌어지면서 리터당 1달러가 넘는
우유값이 75센트로 떨어졌고 크림류는 절반값에 살수가 있게 됐다.

샴페인값도 10%이상 인하돼 신년초는 연일 축제분위기에 젖어있다.

수입관세가 다른 회원국에 비해 비교적 높은 이 나라는 조만간 자동차
컬러TV등 공산품값도 크게 떨어질 것으로 전망돼 소비자들이 물품구입을
늦추고 있는 분위기다.

주류의 수입독점 공급을 실시해온 핀란드도 EU회원가입과 함께 개별유통이
가능해져 와인등의 기존가격이 점차 파괴될 전망이다.

결국 역내 수입자유화가 가속되고 유통구조가 개선되면서 기존의 가격으로
경쟁을 할수 없는 새로운 분위기가 유럽에 정착되고 있다.

"일물일가"는 이제 경제학 교과서에나 볼수 있는 구시대의 법칙으로
전락했으며 경쟁력 강화를 통한 가격인하만이 기업의 생존을 보장해 주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