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새벽 일본열도를 덮친 대지진은 긴키(근기)지방에 엄청난 피해를 몰아
왔다.

사망자및 행방불명자만도 1천명을 훨씬 넘고 부상자도 수천명에 이른다.

가옥과 건물 역시 수천채가 무너졌고 화재로 솟아오른 연기가 주요도시의
하늘을 검게 뒤덮어 폭격을 받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이번 지진은 관서지방의 경제에도 엄청난 타격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의 동맥이라할 수있는 고속도로가 붕괴됐고 신간선마저 내려앉아 물류
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주요공장들은 조업정지에 들어갔고 주가도 큰폭으로 밀렸다.

고베인근의 아와지시마를 진원지로 하는 이번 지진은 지난20년대의 관동
대지진이후 최대의 피해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앞으로 더욱 큰 지진이 덮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팽배해 있다.

지진의 피해가 이처럼 커진 것은 크게 두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지진의 진원지가 인구및 산업시설등이 밀집해 있는 대도시부근
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은 올들어서도 수차례의 지진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농촌지역이었던
관계로 피해가 적었다.

최근 홋카이도지방을 덮쳤던 지진도 진도에서는 이번의 지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사망자는 2명에 그쳤었다.

또다른 중요한 이유는 이번 지진이 의외의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일본의 지진은 지금까지 대체로 지진에 대한 준비가 철저한 관동 또는
동북지방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대비가 미진한 지역을
갑자기 습격한 지진이 피해를 더욱 크게 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그동안 일본의 지진을 수년전 LA에서 일어났던 지진과 곧잘
비교해왔다.

미국의 경우는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면치못했었지만 일본은 지진이
일어나도 별피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도로나 철도가 붕괴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은 일본의 높은 기술수준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며 은근한 자랑거리(?)로 삼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사실 똑같은 지진이 관동지방에서 일어났다면 피해가 훨씬 축소됐을런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번지진은 아무리 기술수준이 높아도 대비를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큰 교훈을 남기고 있다.

유비무환이란 단어가 항상 통용될 수있는 것은 아니지만 준비를 철저히
하면 최소한 피해를 크게 줄일 수는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