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가 체첸이란 자그마한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다.

40일 가까이 국내외에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전투를 벌이며
사태를 조기에 매듭지으려 시도하고 있으나 해결까지는 상당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현상황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지난 91년 11월1일 조하르
두다예프 체첸자치공화국 대통령의 분리/독립선언에서 비롯된 불씨를 잘못
다뤄 자신의 정치생명마저 위협하는 화휘로까지 발전시킨 듯한 모습이다.

특히 무력사용이란 극단적인 강수를 택함으로써 탁월한 정치적 직관력을
갖춰 갖가지 어려움을 헤쳐나온 그가 왜 자신의 권좌까지 위태롭게 만들
위험한 도박을 하지 않을 수 밖에 없게 됐는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체첸공화국의 두다예프대통령은 옐친에게는 줄곧 목의 가시나 다름없었다.

체첸의 분리.독립을 용인해주자니 카스피해 주변의 여타 소수민족의 동요를
조장하는 격이 되며 이는 곧 카스피해부근의 엄청난 원유를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수 있는 탓이었다.

옐친행정부는 이에 따라 91년 9월6일 두다예프가 체첸공화국내 구소련
정권을 축출하고 정치 전면으로 부상하자 그와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협상은 옐친의 뜻대로 되지 않고 두달뒤 체첸의 독립선언으로 귀결
됐다.

이후 러시아는 체첸공화국 내부의 쿠데타를 유도해 사태를 해결하려 했으나
이마저 실패, 무력사용이라는 방법을 동원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체첸에 대한 무력사용은 국내외에서의 옐친에 대한 지지기반을 무너뜨리고
옐친에게 오명만을 남겨줄 수도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체첸인들은 고향땅을 지킨다는 명분아래 필사적으로 항전할 것이지만
러시아 군인들은 장기 게릴라전을 수행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여 군사적으로도 성공작이 되기는 힘들 것이란 풀이다.

특히 구소련 시절 아프가니스탄에서 상처만 안고 퇴각한 이후 게릴라전은
러시아 군인들을 진저리치도록 만드는 요소의 하나였다.

역사적으로도 체첸인들은 호전적이며 강인한 민족으로 정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제정 러시아시절 남부국경의 안정과 인도양의 부동항을 얻으려는 황제의
군대가 이 코카서스 사람들을 굴복시키는데 60년이나 걸렸었다.

유럽연합(EU)과 미국등 외국에서의 비난 여론은 차치하고서도 국내에서의
옐친의 지지기반 약화만해도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 체첸에 대한 옐친의 전략에 지지를 보내는 측은 내각과 측근의 일부
매파인사들 정도이며 기존의 정치기반이었던 진보파 정치지도자들은 거의
모두 등을 돌렸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전투과정에서 드러난 징후는 옐친이 군사작전에 관한
통제력을 잃지 않았나 의심이 들 정도여서 국내외에서 흘러다니는 권력
약화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4일 옐친 대통령은 체첸의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수도 그로즈니
에 대한 공습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다음날에도 전투기공습은 이어졌다.

또 지난 10일 러시아측은 48시간 휴전을 제의한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수시간만에 깨지고 말았다.

봅 돌 미공화당 상원 원내총무는 이를 옐친의 군부통제력 약화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토마스 피커링 러시아주재 미국대사의 견해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지난 10일 ABC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군사작전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는 않았지만 옐친의 지지기반이 거의 대부분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했다.

피커링대사는 이어 이시점에서 옐친이 현상황을 타개할 묘책을 강구할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은 러시아내 국제사회연구센터가 10일 발표한 여론조사결과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러시아인 3천명을 대상으로 한 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8.9%가 체첸에
대한 무력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64.7%의 응답자는 옐친이
군통제력을 상실했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66.9%는 서방측이 인권유린방지 차원에서 체첸사태에 개입해야
한다고 답해 옐친의 전략을 지지하지 않고 있음이 입증됐다.

미국등 선진국에서는 옐친의 정치생명이 체첸사태로 인해 크게 단축될
것이란 견해가 압도적이다.

지난 9일 뉴욕타임스는 사설과 칼럼을 통해 미국은 옐친이후에 대비,
예고르 가이다르등 민주지도자와 군부내 대화채널을 다양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91년 취임이래 두차례의 쿠데타기도를 무산시키며 살아남은 옐친
대통령이지만 체첸사태는 그에게 엄청난 짐이 되고 있다.

과연 옐친대통령이 이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고 오는 96년 6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에서 재선될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 김현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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