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10일 스페인 페세타가 폭락세를 보이자 런던 외환시장의 환투기군들은
그 낙폭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투매 시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폭락세가 지속될 경우 스페인은 자동적으로 유럽의 환율조정체계(ERM)에서
탈락하며 이는 곧 스페인화폐의 가치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날 페세타는 마르크당 87페세타선에서 하락세를 멈춰 탈락위기
(91마르크대)는 간신히 넘겼다.

그러나 약세기조는 지속되고 여전히 환투기군들의 사냥대상으로 올라 있다.

이날은 페세타만이 위기를 겪은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리라도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수모를 당했다.

외환시장에서 리라화를 사겠다는 주문은 사라졌으며 상대적으로 마르크화
만이 그 가치가 수직 상승했다.

문제는 리라와 페세타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 자국의 경제난 때문은 아니란
점이다.

경제적으로는 두나라 모두 지난해 2% 이상의 신장세를 기록, 나름대로
수확을 거뒀다.

그러나 양국의 정치는 "도덕성 상실"이란 위기를 겪어왔다.

집권층이 부정스캔들에 휩싸이는등 정치적 불안이 지속, 통화위기로 연결된
것이다.

이탈리아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집권 9개월만인 지난해말 총리직을
물러났다.

자신이 소유한 핀인베스트그룹이 뇌물공여 혐의로 물의를 일으킨 결과였다.

돈과 권력을 동시에 잡았던 그는 결국 돈때문에 권좌를 물러났으며
이탈리아는 현재 정치부재 상황에 빠져 있다.

스페인도 펠리페 곤잘레스 정권이 지난해 증시파동에 관련돼 곤욕을 치룬데
이어 금년초는 또다시 카탈루나 분리주의자들의 암살루머에 휩쓸리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곤잘레스총리의 사실부인에도 불구, 이를 믿는 스페인국민은 한명도 없는
실정이다.

두 나라는 모두 집권층의 도덕성 결여가 경제위기를 초래한 셈이다.

결국 당국은 집권층의 화려한 공약보다는 도덕성무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을 일깨워주는 좋은 예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