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용 마우스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로지테크는 창업한지 불과
13년만에 세계마우스시장의 3분의1을 장악한 초고속 성장기업이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이회사는 미국의 스탠포드대학교정에서 함께 공부했던
3명의 청년엔지니어들이 81년 창업했다. 이탈리아출신의 엔지니어 기아코모
마리니와 피엘루이기 자파코스타,스위스출신의 엔지니어 다니엘 보렐이
그들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마우스가 지금처럼 대중화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엔지니어같은 전문컴퓨터이용자들만이 사용할 것이라고 판단,전문가들에게
직접 판매하는데 사업의 중점을 뒀다.

그러다가 다국적기업인 휴렛 팩커드사로부터 이회사 컴퓨터용 마우스를
개발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생각을 바꿨다. 휴렛 팩커드 뿐만아니라 다른
컴퓨터메이커들도 고객이 될수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지테크는 스위스중심의 생산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 84년 캘리포니아주
에 제조공장을 설치했다. 그리고 1년안에 10개의 대형 컴퓨터제조업체들
로부터 주문을 받아 연간 30만개의 마우스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2년후에는 아시아지역의 컴퓨터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대만에 공장을
설립했다. 그이후 성장세는 지속,88년 유럽메이커들을 위해 아일랜드에
공장을 설립하고 스위스에서의 생산은 90년 중단했다.

그러나 설립초기의 생산은 대부분 대형 컴퓨터메이커들을 위한 OEM
(주문자상표부착)방식의 생산이었기 때문에 이익은 작을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급성장하고 있는 미국의 마우스소매시장에 직접 자체브랜드를
갖고 뛰어드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자체 판매망이 없었던 그들로서는 퍼스널 컴퓨터잡지에 광고를 게재,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결과는 대히트였다.

88년에 매출이 1억달러상당에 이르게 되고 스위스증권거래소에도 주식을
상장했다.

회장인 보렐은 스위스 로잔에서 재무경리와 제품개발을 책임지고
마리니와 자파코스타는 마케팅과 캘리포니아에서의 소프트웨어개발을
담당했다.

로지테크는 점차 동아시아국가들의 저가공세에 시달리자 제품다양화전략을
추진했다. 추가적인 기술을 요구하는 새로운 시장에 파고들었다.

회사슬로건을 컴퓨터에 감각을 제공하는 "컴퓨터의 인간화"로 설정했다.
이러한 슬로건아래 나온 것이 "센스웨어"라고 불리는 제품들이다.

로지테크는 91년까지 매출과 이익이 모두 두자리 성장률을 보이며
순조로운 성장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이면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내포돼 있었다. 스위스 밖에 있는
3개공장이 모두 제각각 제품개발과 제조,마케팅을 함께 하고있었기
때문에 중복 투자되는 부문이 많았다.

해당지역의 고유기업이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독립운영방식을 택한
것이 회사를 괴롭혔던 것이다.

92년 PC업계에 악명높은 가격인하경쟁에 불이 붙었다. 동시에 윈도우라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됐다. 윈도우의 개발은 마우스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
증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수요폭발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가격인하경쟁으로 회사의 재무
사정은 오히려 악화됐다. 개당 1백20달러하던 마우스가격이 20달러까지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회사창립후 처음으로 손실을 기록했다. 해결책은 생산코스트를 낮추는
수밖에 없었다. 대만과 아일랜드공장은 그대로 유지하고 생산코스트가
높은 캘리포니아공장을 폐쇄키로 했다. 또 중국에 합작공장을 설립했다.

이때 미국공장을 담당하던 마리니는 불만을 품고 회사를 떠났다. 92년
위기를 겪으면서 가장 중요한 미국시장을 직접 챙기기 위해 실리콘
밸리를 중심거점으로 삼았다.

스위스본사에는 오직 재무관리기능과 첨단제품개발기능만을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해외공장으로 이관시켰다.

2천4백명의 종업원중 현재 스위스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1백명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스위스본사의 기능은 축소됐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컴퓨터관련기업이기 때문에 그나마 상징적인 의미로 본사기능을 남겨
놓았다.

회사의 수익성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94년3월말로 끝난
93회계연도의 순이익은 전년에 비해 3배정도 증가,2천1백만달러에
달하고 매출은 전년에 비해 17% 증가,3억7천5백만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컴퓨터산업이 워낙 급변하기 때문에 10년앞을 내다보는 것조차
어렵다고 로지테크의 오토 쿤텔부사장은 실토하고 있다.

<최완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