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가 일본경제에만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정부의 엔차관이나 사무라이본드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큰 중국이나
동남아시아국가들은 엔고로 인해 가만히 앉아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감내하고 있어야 한다.

달러당 1백40엔대를 유지하던 90년대초에 비해 엔화는 현재 30%이상 절상돼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 엔화표시로 조달한 채무원금도 그만큼 부풀어났고 이자도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아시아국가들로써는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엔으로 바꿔 부채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최근의 엔화급등으로 엄청난 환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아시아채무국들은 엔화표시차관의 상환을 서두르는 한편 일본
정부에 대해 엔고로 추가된 채무부담을 덜어달라고 하소연하고 나섰다.

물론 엔고로 타격받고 있는 일본이 채무자들의 딱한 사정을 고분고분
들어줄만큼 맘씨가 좋지는 않다.

일본정부는 13일 최근의 엔고로 원리금상환부담이 커진 아시아국가들이
공적차관의 상환조건을 재협상하자는 호소에 대해 어림없다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

반정부기구인 대외경제협력기금(OECF)의 추지 유조국장은 "이자나 원금
상환과 관련, 아시아국가들을 예외대우하지 않겠다"면서 대신 앞으로의
신규차관에 대해서는 엔고요소를 고려하겠다는 정도의 아량을 보였다.

일본은 지난 80년대말 또 다른 엔고가 있고 나서 90년부터 말레이시아에
대해 제공한 차관에 대해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2.9%의 저금리를 적용한
적이 있다.

물론 엔고의 고통이 아시아국가들에 똑같은 무게로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말현재 1조3천6백60억엔에 달하는 최대엔화채무국인 인도네시아의
경우 엔고덕택에 일본으로의 수출이 크게 늘고 있고 탈일본을 서두르고
있는 일본기업들의 직접투자가 증가일로에 있어 오히려 긍정적인 혜택을
기대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비슷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말레이시아나 태국도 엔고로부터 채무이행
부담보다는 인도네시아와 마찬가지의 혜택을 받는 편이다.

즉 외환보유고에 엔화비율을 높임으로써 원리금상환을 위한 엔화조달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때문에 이들 동남아시아국가들은 일본에 대해 아쉬운 소리를 하기 보다는
더 이상의 추가적인 부담을 방지하기 위해 엔화표시부채의 상환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의 엔고로 가장 심각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의 엔화차관은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많은 8천6백84억엔.

그러나 이는 실제로 집행된 누적금액이며 약속된(계약베이스) 차관규모로는
1조7천억엔에 달한다.

중국의 한 관변연구소는 엔화차관의 원금누적액이 최근의 엔화급등에 따라
달러표시로 50%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에 지원을 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문제는 최근의 엔고가 중국의 원리금상환이 본격화되는 시점과 일치
한다는데 있다.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엔차관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79년부터이며 90년
부터 원리금상환에 들어갔다.

중국의 원리금상환액은 작년에 4백50억엔에서 올해에는 5백억엔을 크게
웃돌 것으로 예정되는 등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여기에다 엔고로 인해 올해 상환해야 할 원금만 60억달러가 추가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원리금상환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엔고라는 직격탄을 맞은 중국은
다른 동남아시아처럼 대책이나 우회적인 돌파구가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
이다.

특히 중국은 30년만기라는 일본정부의 장기차관뿐만 아니라 일본수출입
은행으로부터도 에너지관련차관을 이용하고 있다.

때문에 엔고로 인한 채무악화가 성장가도에 있는 중국경제에 또 다른
족쇄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최근의 엔고가 정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만이 리스크를 도맡을 수 없다"면서 일본이 채무국의 부담을 나눠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무라이본드로 조달한 엔화자금을 대부분
즉시 달러화로 스왑하는 방식을 이용했기 때문에 엔고의 거센 폭풍우를
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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