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단어중 하나인 "계열"이 유통분야에서
무너지고 있다. 양판점이나 통신판매같이 계열을 뛰어넘는 유통방식이
날로 영역을 확대해가면서 무너지는 계열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외국제품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마쓰시타전기산업은 지난 3월 유통체인업체인 다이에와 모종의 화해를
했다. 오랜동안 다이에와의 상거래를 거부해왔으나 앞으로는 마쓰시타의
전자제품을 적극적으로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도.소매업 주차장경영 전기제품설치.아프터서비스등의 전문유통업체인
다이에는 마쓰시타전기산업이 요구하는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해 왔다. 다이에의 행위에 불만을 가져왔던 마쓰시타가 화해한 것은
결국 유통흐름에 굴복했다는 뜻이다.

마쓰시타의 굴복은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현재 일본시장에서는 자사
유통망이나 계열유통업체를 갖지 않은 제조업체나 외국업체들이 양판점
전문점들과 직거래방식으로 계열유통을 무너뜨리고 있다.

아이와는 오디오전문을 지향하는 기업으로 종합전자업체들과 달리
계열점을 갖지 않고있다. 아이와는 지난 3월결산에서 매출액1천7백50억엔
(전년비8%증가)과 경상이익50억엔(70%증가)을 기록,심각한 불황속에서도
유난히 좋은 경영실적을 보인 것으로 집계됐다.

해외생산거점을 확보, 제품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점과 양판점등과의
직거래유통이 실적을 끌어올린 요인이다.

지난 1~2년사이에 일본의 오디오전문점에서 인기를 모은 상품은 네덜란드
필립스브랜드의 컴팩트디스크(CD)플레이어였다. 필립스는 10만엔이상의
고급전자제품시장에서 20%란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럭키금성역시 양판점 할인판매점과의 직거래로 사상최악이란
가전불황중에 좋은 실적을 보이는 대표적인 외국기업으로 꼽힌다. 금성이
일본시장에 공급하는 전자제품중 양판점등과의 직거래비율은 3년전 30%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90%정도에 이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계열유통망을 뚫는 대표적인 또다른 형태가 통신판매다. 통신판매라
하면 카탈로그를 이용, 저렴한 제품을 전화로 접수한후 배달한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고가의 전자제품도 통신판매로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않다.

93년 일본의 통신판매시장규모는 1조8천8백억엔으로 10여년만에 3배정도
의 고성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통신판매시장에서
의류제품에 이어 두번째의 매출을 보이고 있는 분야가 가전제품이라는
점이다.

통신판매로 컴퓨터를 팔고 있는 미델컴퓨터는 지난해 일본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델컴퓨터가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고성능 저렴한 가격보다도
강력한 서비스체제다. 회사는 구입후 1년동안에 생기는 고장인 경우 도쿄
오사카등 대도시는 고장접수를 받은날,기타지역은 바로다음날 회사관계자
가 무료출장으로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다.

통신판매의 취약점은 소비자들이 정체를 알수없는 회사에 속고사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회사인지도를 높이고
서비스체제만 충실해진다면 유통마진이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만큼 충분한
경쟁력을 갖게 된다.

미국시장에서 다년간 노하우를 축적한 외국계통신판매 의류업체들이
언제라도 반품을 받아준다는 전략으로 "일단 팔고나면 나는 모른다"는
식의 일본업자들을 시장에서 몰아내고 있다.

특히 수요.공급자가 은밀한 연결구조로 이뤄진 대표적인 분야중 하나인
의약품시장은 외국업체들이 가격과 약효란 공정한 바로미터로 접근해
오면서 흔들리고 있다. 미국최대의약업체 메르크그룹,독일의
베링거잉겔하임, 영국의 ICI등이 스스로 판매채널을 구축,일본시장에
스며들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비관세장벽으로 지적됐던 계열구조가 우선 유통분야
에서 무너지고 있다.

<박재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