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W 채. 한국명으로 채정우(60)인 그는 재미한국인으로서 일본굴지의
종합상사인 이토추의 부사장겸 이토추아메리카의 사장이다.

지난 91년에 상무직급으로 이토추의 미국자회사경영을 떠맡은 뒤 작년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올해로 33년째 이토추사람인 채부사장은
외국인이면서 일본기업에서 혼자힘으로 정상까지 오른 희귀한 사람이다.
사원으로 출발,세계를 상대로 한 상거래에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고
물량밀어내기보다는 이윤을 중시하는 원칙이 오늘날의 그를 만들어냈다.

채부사장은 가부장적이고 상하가 분명한 일본문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체제도전적이다. 우선 옷차림에서 색색의 멜빵을 즐겨하고
회의석상에서 곧은 말을 쏟아놓는다.

본인은 자신의 자유분방함이 이토추의 간부회의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자평한다.

채부사장의 반일적인 기질은 행동거지 뿐만아니라 경영철학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미국의 수치목표설정요구를 지지한다.
5백억달러에 달하는 일본의 대미무역흑자에 일조하고 있지만 일본의
일방적인 흑자에는 반대한다. "미국이 주장하는 수입목표설정이
경제적으로는 터무니없을지 모르지만 미일간의 무역역조문제는 미국을
결집시키는 기능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일본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채부사장은 일본의 기업문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일본기업들은
계열체제와 불필요한 사무직고용을 유지한 채로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완전고용과 사회적 안정이 궁극적인 목표이겠지만 그러한 경영방식으로는
국제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견뎌낼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그러한 도전적인 태도는 일본기업내에서는 "무라하치부",즉 마을의
법도를 어겨 쫓겨난 추방자가 될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추에서
살아남아 정상까지 오를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업가자질과 함께 무로후시
미노루사장의 지원덕택이다.

채부사장은 무로후시사장이 미국자회사의 사장으로 있을때 능력을 인정
받은 것이 지금까지 인간적인 유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채부사장은 상담할 때가 가장 즐겁다. 특히 기업끼리의 제휴관계를
이어 주는 중매쟁이로서의 그의 능력은 탁월해 일본기업은 물론
미국기업들로부터도 높이 인정받고 있다.

지난 80년대중반 미국제너럴 모터스(GM)와 일본도요타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합작으로 자동차조립공장을 설립하는 이른바
넘미(Nummi)사업을 타결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92년에는
이토추와 도시바가 10억달러에 타임워너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것을
중재했고 최근에는 US웨스트사와 타임워너사가 이토추계열인
도쿄초후유선TV의 33%의 지분을 취득하는 협상에 간여했다. GM과의
넘미합작사업협상때 도요타대표였던 히가시 칸씨는 채부사장이
GM측사람이었지만 냉정한 중재태도를 보고 그의 중립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의 그러한 재능은 냉철한 두뇌에서 나온다는 평가다. 부인이자
자동차평론가인 마리안 켈러여사는 "그는 정말 침착하다. 그는 화를 낼
필요가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반면에 협상테이블에서는
잔인할 정도다. 꼭 먹이를 노리며 갈대숲에 몸을 감추고 있는 늑대같다"고
남편을 평가한다.

채부사장은 동서문화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이 점령지인
한국에서 한창 일본어교육을 강요하고 있던 40년대초에 태어난 채부사장은
57년 경북대를 졸업하고 23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남캘리포니아대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토추를 통해
의류수입업을 하던 한국교포의 딸과 결혼한 그는 장인의 도움을 받아
61년에 이토추에 입사했으나 이혼하고 현재의 부인과 재혼했다.

채부사장은 한국인을 곧잘 경멸하는 일본인들사이에서 우뚝 서서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이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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