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전자메이커인 G사 컴퓨터부 박과장은 요즘 중국 공부에 눈코
뜰새가 없다. 지난해 중국출장에서 받은 충격이 너무커 자나깨나 중국시장
만을 연구하고 지낸다.

컴퓨터 부품과 주변기기 홍보차 중국에 갔다가 상담할때마다 중국측에서
쏟아진 최고급 기술에 대한 질문에 진땀을 빼고 돌아온후 중국에 대한
생각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한국내 정보론 중국의 컴퓨터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막상 상담때
나온 중국측 파트너는 미국, 일본 등에서 수년간 공부를 한데다 나름대로
깊은 연구까지 한 상태여서 도저히 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수
배워온 기분마저 느꼈다.

도대체 언제 중국일 이렇게 변한 것인지 의아스러워 중국에 대해 차근차근
공부를 시작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내의 중국 정보는 아직도
어둡다는 느낌 뿐이다.

그래도 시장조사 단계에서 이 정도에 그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턱대로 중국에 물건을 팔러 갔다가 낭패를 본 것보다는 이정도라는
각성을 한게 도움이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아직도 중국시장에
대해서도 도부지 오리무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굴지의 D전자는 80년대 후반 한국의 중국투자중 특기할 만한 일을
했다. 한국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하고 중국에 냉장고
생산라인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소비자의 성향을 잘못 읽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중국소비자들이 다기능의 고급 냉자고를 선호하기 시작할 것을 예측못한
것이다. 더구나 이미 중국내 냉자고 생산라인이 60여개가 있었다. 그 공장
들 조차도 구형을 포기하는 단계라는 점을 파악하지 못했다. 품질면에서
한수 떨어진 제품으로는 경쟁이 애초에 어려웠던 것이다. 80년대말 일시
적인 냉장고 시장의 위축현상까지 악재로 작용,D전자가 생산한 구형모델은
소비자에게 외면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투자지역인 복건성지역은 배후지가 산악지대로 육상운송이 어려운
곳이었다. 다른 지역 판매가 어려운 상태에서 유통망을 확대할수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파트너와의 불화도 있었다. 파트너는 유통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현에 옮겼던 제1세대들은 문제가 발생했을때
이미 제2선으로 물러나 있었다. 초기의 실수롤 제2세대가 곤혹을 치르고
제3세대는 제1,2세대의 불성실만 탓하면서 기업을 정리했다.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는데다 사람마저 자꾸 바뀌다보니 일이 연결될리 없었다.

이처럼 국내 굴지의 업체라는 대기업도 시장을 읽는데는 실패했다. 투자
기업의 설립에만 급급하여 이런저런 사정을 잘 타진해보지 못한 것이다.
타당성 조사가 부족했다는 말이다. 요즘도 이 지역을 방문하면 그 지역
정부 중국 관계자들이 대표적인 외국기업의 실패사례로 이 회사를 꼽는다.
그후 D그룹의 중국진출전략은 몰라보게 달라져 오히려 전화휘복이 됐다.

"시장조사는 중국진출의 기본입니다. 중국내 실수요자들이 전부 중국
남쪽에 있는데 동북부에 공장을 만든 것은 사전 조사가 불충분했기
때문임을 입정합니다"

천진에 공장을 둔 A카세트데크공장 사장의 말이다. 유통을 몰랐던 것이다.

중국시장의 유통구조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 전국적인 유통망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수 있다. 특정
기업군들이 특정 상품의 유통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시스템을 흔히 볼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이 기업들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는게
현실이다.

북경인근의 문구류 합자공장 M사의 경우도 이 일로 골머리를 썩었다.
문구류의 중국내 유통구조는 제 1,2,3도매상등 복잡하게 형성돼 있다.
또한 제조업자가 물품을 납품할때 리베이트를 주고 수금할때도 커미션을
줘야하는 관행을 몰랐던 것이다. 내수판매가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결국
기업정상화를 위해서는 내수보다 수출쪽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시장을 안다는 것은 비즈니스의 제1번 요소가 된다. 중국시장은 외국기업
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뒤로 미뤄둘 수
만은 없다. 신규 수요를 찾으려면 열심히 발로 뛰어야 한다. 최소한 소비자
들을 찾아다니며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체크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체 수요를 노릴 경우는 정확히 어떤 식의 대체가 바람직한 것인지
중국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또한 적어도 자기제품에 대해서만큼은 중국내 유통메카니즘을 파악하고
있었야 한다. 시장을 모르고 물건을 팔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