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베트남금수해제는 정치적 명분보다 경제적 실리를 우선하는
미통상정책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치이다. 또 국제질서가 정치
군사관계보다 경제관계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현실을 새삼 확인해주는
조치이기도 하다.

미국은 지난 75년 베트남전에서 패배한뒤 베트남전역에 대해 금수조치를
취한 이래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실리중 양자택일의 고민을 거듭해왔다.
경제봉쇄를 지속해 패전에 따른 정치적 상처를 치유할것인가,아니면
금수조치를 해제해 경제적 이득을 확보할것인가를 놓고 저울질해왔다.

미국이 이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데는 동서냉전종식이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89년 베를린장벽붕괴를 계기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간 벽이
허물어진후 유럽 일본등 외국기업들의 베트남진출은 러시를 이루었다.
미기업들만 정부의 금수조치로 베트남에 진출할수 없었다.

값싸고 잘 훈련된 노동력과 석유 광물등 풍부한 자원을 보유,황금시장
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는 베트남시장을 경쟁국들에 고스란히 뺏기자 미
기업들은 정부에 금수해제를 강력히 요구해왔다.

업계의 강력한 해제요청에 직면한 클린턴정부는 내부적으로 이미 지난해
해제방침을 세우고 금수해제발표를 위한 결정적인 계기만을 기다려왔다.
최근 금수해제장애물이던 베트남전의 미군실종자처리문제가 베트남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로 큰 진전을 이루고 지난달 27일에는 상원이 해제결의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하자 마침내 3일 이를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것이다.

미국이 금수해제와 더불어 상호연락사무소도 설치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양국간 국교정상화도 멀지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제한적으로
활동해오던 미기업들은 이제 베트남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수있게 됐다.

현재 35개 미기업들은 지난 92년 미정부가 베트남현지사무소설치를 허용한
이래 하노이와 호치민시등에 사무소를 설립,베트남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조사하는등 본격적인 진출에 대비해왔다. 엑슨 IBM 보잉등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미국은 특히 베트남유전개발,컴퓨터및 통신,항공기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에따라 이미 이들 분야에 상당히 진출해있는 일본
유럽기업들과 미기업들간의 경쟁이 격화될 전망이다.

금수해제로 미국자본과 첨단기술을 유치할수 있게된 베트남은 경제개발과
개혁속도를 한층 가속화 시킬 수 있게 됐다. 이때문에 금수해제의 최대
수혜자는 미기업들이 아니라 베트남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베트남간의 경제관계재편은 우리기업에도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칠것임에 틀림없다.

미국의 대베트남 금수조치해제로 베트남진출을 추진중인 국내기업들은
앞으로 큰부담을 안게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베트남 진출이 본격화될 전망이어서 국내기업들은 시장선점
효과를 잃고 베트남시장에서 이들 선진국과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내기업들은 그동안 미국의 금수조치해제에 대비,시장선점을 위해 대
베트남투자를 적극 추진해왔다.

현재 현대정공이 1억달러규모의 컨테이너공장건설사업을 추진하고있으며
대우그룹은 이미 하노이시에 3백실규모의 호텔건설에 착수했다.

쌍룡그룹도 한국중공업과 함께 3억달러이상이 소요될 연산1백20만t규모의
시멘트합작공장프로젝트를 추진하고있다.

그러나 아직 투자성과는 미흡한 실정이다. 대형프로젝트는 오리온전기의
컬러TV브라운관공장(총사업비 1억7천만달러)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직 추진단계에 머물러있는데다 대부분의 투자가 부가가치가 낮은
경공업부문에 집중돼있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못하고있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해있는 국내기업은 1백64개사로 투자규모는 지난해말
기준 53건 4억9천7백50만달러(베트남허가기준)에 달하고있다.

이같은 투자실적은 대만(1백16건 15억달러)홍콩(1백65건 10억4천만달러)
프랑스(48건 5억5천2백만달러)에 이어 네번째로 많은 것이다.

다만 이번조치로 섬유등 수출경쟁력이 크게 약화된 경공업부문을 중심으로
국내기업들의 베트남진출은 크게 늘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베트남정부가 중점적으로 해외투자 유치에 나서고있는 도로 항만
전력 시멘트등 기간산업부문에서는 미국의 금수조치해제로 국내기업들은
종전보다 크게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현재 현대 삼성 럭키금성 대우 쌍룡등 주요 대기업그룹들이
추진중인 자동차 전자 시멘트등 중화학부문중심의 대베트남 프로젝트가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경협자금 확대등 정부차원의 지원책이 뒤따라야할
것으로 지적되고있다.

<이정훈.문희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