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쓰비시(삼릉)상사사장인 마키하라 미노루는 매우 이색적인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최근 일본사회에는 외국에서 생활하다 돌아온 주재원자녀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마키하라사장의 연배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이다. 그는 런던에서 태어나 7세때 처음으로 일본땅을 밟은
주재원자녀의 원조격이다.

또한가지 마키하라사장의 인생이 독특하다는 것은 그가 입학이나 입사
등 소위말하는 인생의 관문에 해당하는 시험을 한번도 거치지 않고
살아왔다는 점에서도 쉽게 알수있다.

그는 런던에서 돌아와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일본에서 마친뒤 고등학교를
다니던중 미국 뉴햄프셔주의 센트폴 고등학교에 추천을 받아 입학했다.
그리고 하버드대학에 진학할 때도 고등학교성적과 추천서로 통과됐다.
현재의 삼릉상사도 무시험으로 입사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그의 학력이나, "인생에서 별다른 무리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얘기하는 그의 회고만을 들으면 그저 행복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키하라사장의 인생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9세때인 39년 마키하라는 당시 런던에 근무하던 부친이 영국헌병에게
체포 구속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일본정부가 로이터통신의 기자
등 영국인들을 체포한데 대한 보복조치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난후에는 아예 부친의 사망소식을 듣는다. 일본에
점령된 동남아지역의 경제개발을 위해 정부당국의 요청을 받고 현지로
부임하던중 배가 침몰한 것이다.

졸지에 부친을 잃은 마키하라의 인생은 1백80도 돌변했다. 어머니는
도쿄에 있는 명치옥이란 음식점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2차대전이
끝나고는 미점령군의 도서관에서 일을 하면서 혼자몸으로 마키하라를
키웠다.

부친이 삼릉상사의 촉망받는 인재였던 관계로 생전에 부친을 알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큰 도움도 받았다. 이와자키라는 지인덕분으로 별
채집을 얻어 전쟁을 넘겼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서 이집이 미점령군에
접수되고 나중에는 성공회의 건물로 쓰이게 됐다.

집을 빼앗긴 것이 마키하라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성공회를 통해
만난 사교가 하버드 대학출신으로 외국유학을 꿈꾸고 있던 그의 상담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 "직접 하버드에 들어가는것은 무리지만 현지의
고등학교로 가서 열심히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은
마키하라는 태평양을 건너는 화물선에 올라 대망의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생활에서도 사교를 통해서 알게된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수 있었다.
영국생활에서 익힌 영어는 큰 보탬이 됐으며 배우자를 얻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삼릉제지의 회장딸인 부인이 중학생이었을때 영어회화를
가르치던것이 계기가돼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신경질적인 외형이지만 원래 타고난 성품상 마키하라
사장은 낙천가이다. 그래서 고전적인 일본인으로서는 생각할 수없는
발상이나 사고방식도 가능한지 모른다. 사내에서 그에게 주어진 "미국인"
"우주인"이란 별명이 그의 성격을 가장 잘표현하고 있다.

마키하라사장이 끌고가야하는 삼릉상사는 한해 매출액이 15조엔을
넘는 대기업이다. 책임도 막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종합상사의 존재
가치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속에서 사장자리를 맡았다는것이
마키하라사장의 형세판단이다.

신년인사에서 마키하라사장은 "종합상사는 공룡과 같이 과거역사의
유물로 남느냐, 신세대를 살아남는 호모사피엔스가 되는가하는
역사적인 전환기를 맞고있다"며 전사원에게 위기감을 불러 일으키는
발언을 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같은 신년사가 마키하라사장이 자기스스로에게
얘기하는 의지의 표현에도 해당한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까지의
마키하라와 삼릉상사사장으로서의 마키하라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박재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