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에 7타 뒤진 추격자가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골프 드라마’가 펼쳐졌다. 그것도 허접한 대회의 1~2라운드 때 타수 차가 아니라 남자골프 4대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의 최종 라운드에서다. 주인공은 저스틴 토머스(29·미국), 희생양은 미토 페레이라(27·칠레)였다.

23일(한국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서던힐스CC(파70) 1번홀 티박스에 올랐을 때 토머스의 스코어는 2언더파(공동 7위)였다. 단독 선두 페레이라는 9언더파였다. 최종 라운드에서 7타 차이는 야구로 치면 9회말 5점 차, 축구에선 후반 10분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2골 차이 정도란 게 골프업계의 설명이다. 웬만해선 뒤집히지 않는 격차란 얘기다.

이걸 토머스가 뒤집었다. 18번홀을 끝낸 뒤 성적표는 토머스 5언더파, 페레이라 4언더파였다. 토머스의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통산 승수는 15승(메이저 2승)이 됐고, 세계랭킹은 9위에서 5위로 올랐다. 상금 270만달러(약 23억3700만원)도 손에 넣었다.

승패를 가른 건 경험과 멘탈이었다. 토머스는 전반 6번홀(파3)에서 섕크샷을 하는 등 흔들렸지만,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전반을 이븐파로 버티더니 후반에 3타를 줄여 윌 잴러토리스(26·미국)와 연장에 들어갔다. 3개 홀을 합산해 승자를 가리는 연장전에선 버디 2개를 낚아 잴러토리스를 ‘녹다운’시켰다.

토머스는 뒷심이 강하다. 15승을 거두는 동안 최종 라운드에서 딱 한 번(2017년 CJ컵)만 빼고 모두 60대 타수를 적어냈다. 2017년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때도 2타 차를 뒤집었다. 지난해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플레이어스챔피언십도 역전승했다. 토머스는 이날 인터뷰에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에) 많이 뒤져 있었으나 내 앞에 많은 선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며 “코스가 어려워서 2~4타 정도 줄이면 기회가 올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PGA 루키’인 페레이라는 메이저대회 최종 라운드라는 압박감에 무너졌다. 페레이라는 “1, 2, 3라운드 모두 떨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4라운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고 털어놨다. 페레이라는 전반에 버디 1개를 잡는 동안 보기를 3개나 범했다. 후반 들어서도 14번홀까지 1타를 더 잃었다. 18번홀(파4)에서 기회가 한 번 더 있었는데 이마저도 놓쳤다. 티샷을 물에 빠뜨렸고, 다섯 번 만에 온그린한 뒤 더블보기로 홀아웃했다. 페레이라는 “할 수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18번홀에서 다시 티샷하고 싶다”고 했다.

최종 라운드를 지켜본 골프 전문가들 사이에선 “토머스는 자신과 경기했고, 페레이라는 경쟁자와 싸운 결과”란 얘기가 나왔다. “골퍼는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골프 전설’ 잭 니클라우스의 얘기를 빗댄 것이다. 타이거 우즈도 비슷한 말을 했다. “골프의 상대는 두 개다. 하나는 자기 자신, 다른 하나는 골프 코스다. (상대 선수를 의식하지 않고) 이 둘에 승리하면 이긴다”고.

이런 대역전극이 없었던 건 아니다. 7타 차 뒤집기는 역대 메이저대회를 통틀어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가장 큰 타수 차는 1999년 디오픈 챔피언십에서 나온 폴 로리의 10타 차 역전 우승이다. 당시 장 방 드 벨데는 다 잡은 우승을 놓쳤다. 드 벨데는 당시 18번홀을 앞두고 3타 앞서 우승이 유력했는데, 공을 물에 빠뜨려 연장전에 끌려갔고 결국 졌다. 역대 2위 기록은 1956년 8타 차를 극복하고 마스터스토너먼트를 거머쥔 잭 버크 주니어였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