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45위. 특별히 주목할만한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16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코그니전트 파운더스컵(총상금 300만 달러)에서 박성현(29)이 기록한 성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날 62위까지 떨어진 뒤 일궈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이날 미국 뉴저지주 클리프턴의 어퍼 몽클레어CC(파72·6656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박성현은 버디 6개, 보기 3개로 3언더파 69타를 쳤다. 최종합계 4언더파 284타, 우승자 이민지(호주)와는 16타 차이다.

이날 최종라운드는 박성현의 골프에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지난 2년간 겪었던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한 계단을 올라섰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1, 2라운드에서 박성현은 각각 4언더파, 2언더파를 쳤다. 공동 13위로 예선을 마치며 오랜만에 톱10 진입을 노려볼 수 있던 상황. 최근 부진이 길어졌던 그였기에 본격적인 부활이 시작됐다는 기대감이 나왔다.

하지만 3라운드 무빙데이에서 흔들렸다. 퍼팅감이 따라주지 않으면서 후반에만 보기를 5개 범했다. 순위는 순식간에 공동 62위로 떨어졌다. 오랜만에 만들어낸 상승세가 꺾여버릴 수 있는 큰 위기였다. 박성현은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새삼 골프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한 라운드였다"고 경기 내내 쉽지 않았음을 토로했다. 그래도 그는 의연했다. 박성현은 "오늘은 비록 못했지만 부딪쳐야 하는 난관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잘 할 수는 없다. 계속 경기의 감이 쌓이다보면 좋은 경기력과 성적이 나올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4라운드, 자칫 박성현이 그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았다. 이날 10번홀(파4)에서 경기를 시작한 박성현은 첫 3개 홀에서 내리 버디를 쓸어담았다. 이후 보기 3개를 추가하긴 했지만 후반전에서는 다시 샷감이 물올랐다. 후반 9홀에서는 버디만 3개 잡아내며 기분좋게 3언더파로 경기를 마쳤다.

최종라운드에서는 다시 한번 박성현 특유의 장타가 빛을 발했다. 그는 이날 평균 261야드를 날렸고 페어웨이 안착률도 60%를 넘겼다. 전날 애먹였던 퍼트도 이날은 잘 따라줬다. 박성현은 이날 경기에서 총 28번 퍼트를 사용했다. 3라운드 결과로 주저앉을 수 있었지만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벌여 순위를 18계단이나 끌어올린 것이다.

이날 경기로 박성현은 이번 대회를 기분좋게 마무리했다. 올 시즌 첫 최종 언더파를 기록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도약을 위한 모멘텀으로 활용할 좋은 계기를 만들어냈다큰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박성현은 LPGA 투어 통산 7승을 보유한 한국여자골프의 간판이었다. 2017년 미국에 진출해 메이저대회 US오픈을 제패했고 신인왕, 상금왕, 올해의선수상에 세계랭킹 1위까지 싹쓸이했다. 하지만 어깨부상과 재활로 투어를 쉬어야 했고 이후 부진을 이어갔다. 투어를 쉰 동안 경기감각을 잃은데다 근력이 약해져 이전같은 샷을 만들지 못한 탓이다.

지난 겨울 박성현은 옛 스승 조민준 프로와 다시 손을 잡았다. 미국 전지훈련에서 샷을 다듬었고 체력훈련으로 근력을 끌어올렸다. 조민준 프로는 "박성현은 부진이 길어지면서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원래 갖고 있는 샷감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자신감이 떨어지며 그를 괴롭히는 여러 생각을 덜어내고 보다 단순하게 샷에 집중할 수 있는 훈련을 이어갔다고 한다. 조 프로는 "박성현은 새로 샷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갖고 있던 감각을 회복하면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신감만 회복하면 예전의 기량을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며 "각각의 경기에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이어지고 자신감이 붙으면 곧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