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철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장이 서울 LS용산타워에서 새해 포부를 밝혔다. 싱글 핸디캡을 자랑하는 ‘골프광’인 그는 “남을 속이지 않고 나만의 싸움을 해야 하는 정직함이 골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KPGA 제공
구자철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장이 서울 LS용산타워에서 새해 포부를 밝혔다. 싱글 핸디캡을 자랑하는 ‘골프광’인 그는 “남을 속이지 않고 나만의 싸움을 해야 하는 정직함이 골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KPGA 제공
구자철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장(67)은 역대 회장 가운데 SNS 게시물을 가장 많이 올렸다. 골프 관련 뉴스나 현안에 대한 의견을 거침없이 개진했다. 그러다 보니 구설에도 여러 차례 올랐다. 하지만 임기 3년차에 접어든 그의 성적표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KPGA와 자회사 코리안투어는 지난해 흑자로 전환했다. 협회와 코리안투어가 함께 흑자를 낸 건 2016년 이후 5년 만이다. 부임하자마자 발생한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만들어 낸 성과다.

KPGA 코리안투어는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확정된 대회만 지난해보다 4개 늘어난 21개. 총 상금 규모는 200억원에 육박한다.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까지 포함하면 대회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임기 반환점을 넘은 구 회장은 자신의 성과를 골프에 비유하며 “9번홀을 마쳤는데, 파 7개에 더블 보기를 2개 정도 범한 것 같다”며 “그래도 지난 2년간 한국 남자 골프의 매력을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알린 것 같아 다행”이라고 자평했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1923~2016)의 막내아들인 그는 의외로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1993년 전선을 감는 나무통을 만드는 세일산업을 창업해 독립했다가 2009년 건설회사, 자동차 부품 생산을 하는 강소기업을 손에 쥐고 LS그룹으로 금의환향했다.

지난 2년간 자신의 경영 DNA를 KPGA에도 이식하려 했다. ‘부자 회장님’에 의존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 온 KPGA가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구 회장의 대표 작품이 ‘더 클럽 아너스 K’다. 기업인, 각 분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카운슬러형 후원 그룹인데, KPGA의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열린 챔피언스투어의 ‘아너스 K 제25회 KPGA 시니어선수권 대회’, 야마하·아너스K 오픈 등이 아너스 K가 낸 결과물이다. 그는 “대회를 유치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한 기업이 이걸 감당할 수 없을 경우 협회 재정을 도와줄 수 있는 기부자를 만들려고 했다”며 “다행히 많은 사람이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구 회장은 올해를 KPGA의 성패를 결정할 ‘운명의 시간’으로 보고 신발끈을 바짝 조이고 있다. 협회의 가장 큰 수익원인 중계권 계약의 마지막 해이기 때문이다. KPGA는 2018년 JTBC골프와 5년 계약을 맺었다. 금액은 매년 수십억원 규모의 중계권료를 챙기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와 비교조차 힘든 수준이다. 올해 코리안투어의 인기를 끌어 올린 뒤 내년 재계약 때 제값을 받는다는 게 그의 복안이다.

구 회장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스타 선수들을 많이 보유한 여자 골프에 비해 남자 골프가 밀리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역동적인 샷과 아마추어가 흉내 낼 수 없는 경기력, 김주형이라는 스타 등 지난 몇 년간 남자 골프도 ‘우리의 색’을 보여줬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코리안투어가 많은 기업의 ‘홍보 채널’로 자리 잡은 것이 가장 큰 증거다. 그는 “비즈플레이 오픈을 개최하는 웹케시그룹 등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회사들이 우리가 가진 프리미엄 이미지를 자사 브랜드와 엮어 효과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KLPGA 투어 대회에서는 우승자만 기억에 남지만 KPGA는 대회 타이틀이 팬들에게 계속 회자된다”고 설명했다.

‘아이디어 뱅크’인 그의 머릿속엔 새로운 생각들로 가득하다. 코로나19가 잠잠해져 관중 입장이 가능해지면 고성방가가 허용되는 미국 피닉스오픈의 16번홀 ‘스타디움’ 코스를 당장 도입할 계획이다. 한국 골프의 전설인 한장상 프로를 기리는 ‘한장상 인비테이셔널’도 준비 중이다. 구 회장은 “임인년(壬寅年)을 남자 골프 발전의 디딤돌로 만들겠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골프의 가장 큰 매력은 정직성입니다. 상대를 고생시켜 내가 이기는 다른 종목과 달리 오롯이 나의 플레이로 승부가 결정되죠. 저 역시 골프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올 한 해 골프팬이 남자 골프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도록 신나게 달려보겠습니다. 남은 9홀의 목표요? 버디 4개, 파 5개를 잡아볼게요, 하하.”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