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우승한 기분이다.”

‘괴력의 장타자’ 브라이슨 디섐보(28·미국)가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일을 해낸 뒤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말했다. 7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베이힐C&L(파72·7454야드)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아널드파머 인비테이셔널 3라운드 6번홀(파5·531야드)에서 티샷으로만 그린 근처에 공을 보낸 뒤였다. 디섐보는 “공이 물에 빠지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선두 경쟁 상황에서 ‘모험’ 택해

370야드 초장타로 호수 넘긴 디섐보…"마치 우승한 기분"
이날 531야드로 세팅된 이 홀은 호수를 끼고 ‘U’자 형태로 꺾여 있는 ‘좌(左)도그레그 홀’이다. 물을 가로지르면 캐리로 340야드 정도만 쳐도 1온이 가능한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도전했다가 ‘참사의 주인공’으로 골프 역사에 남았다. 존 댈리(55·미국)는 1998년 이 대회에 출전해 1온을 시도했다가 6번 공을 물에 빠뜨린 뒤 포기했다. 당시 그는 이 홀에서만 13오버파를 적어냈다.

미국 골프채널에 따르면 디섐보가 이날 시속 137마일(220㎞)로 친 공은 347야드를 비행한 뒤 홀과 같은 선상에 있는 페어웨이에 떨어졌고, 23야드를 더 구른 뒤 멈춰섰다. 비록 1온에는 실패했으나 물을 넘겼기 때문에 목표의 절반은 달성한 셈이다. 이 홀에서 버디를 낚아챈 디섐보는 이날 4타를 줄여 사흘 합계 10언더파 206타를 쳤다. 선두에 1타 뒤진 공동 2위다.

디섐보의 모험적 도전은 선두 경쟁을 벌이던 상황에서 이뤄졌다. 디섐보가 6번홀에 들어섰을 땐 8언더파를 쳐 선두였던 조던 스피스(28·미국)에게 1타 뒤진 2위였다. 1온에 실패하면 선두와 한참 멀어질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대회 시작 전에 “호수를 가로질러 1온에 도전하겠다”고 공언한 그는 결국 3라운드에서 약속을 지켰다. 그는 “팬들이 원하는 장면을 보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도전에는 찬사가 이어졌다. 스피스는 “내가 이 대회에 참가한 건 디섐보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미국 방송 해설자 폴 에이징어는 “디섐보는 골프라는 종목의 정의를 새롭게 쓸 선수”라며 “그 정도로 (그의 6번홀 티샷은) 멀리 나갔다”고 극찬했다.

스피스, 홀인원에 벙커샷 버디까지

스피스도 디섐보에게 뒤지지 않는 명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이날 홀인원을 포함해 이글 1개와 버디 4개를 잡았고 보기는 2개로 막아 4타를 줄였다. 사흘 합계 9언더파 공동 4위. 깊은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그는 최근 3개 대회에서 공동 4위-공동 3위-공동 15위로 살아나는 모습이다. 이번 대회에서 ‘톱10’ 이상의 성적을 바라보고 있다.

스피스는 1번홀(파4)에서 약 6m 길이의 버디 퍼트를 넣으며 출발했다. 223야드로 길게 세팅된 2번홀(파3)에선 5번 아이언으로 홀인원을 기록했다. 7번홀(파3)에선 벙커에서 친 샷을 그대로 홀에 넣어 버디를 추가했다. 후반에 기록한 보기 2개가 더 아쉬운 이유다.

48세의 베테랑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는 이날만 7타를 줄여 합계 11언더파로 전날 11위에서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2010년 6월 세인트 주드 클래식 이후 10년9개월 만에 투어 통산 3승을 올리게 된다.

임성재(23)는 이븐파에 그쳐 합계 5언더파 공동 18위로 밀렸다. 로리 매킬로이(32·북아일랜드)가 7언더파 공동 7위에 올랐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