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히오 가르시아가 지난 1일 개막한 샌더슨팜스챔피언십 대회 내내 눈을 감고 퍼트한 사실이 중계 방송 화면에 잡히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PGA투어 중계화면 캡처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지난 1일 개막한 샌더슨팜스챔피언십 대회 내내 눈을 감고 퍼트한 사실이 중계 방송 화면에 잡히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PGA투어 중계화면 캡처
국내 골프가 추석 연휴로 짧은 휴식기에 들어간 사이 바다 건너 미국에선 ‘마스터스 챔프’ 세르히오 가르시아(40·스페인)가 화제로 떠올랐다. 공을 보지 않고 퍼팅하는 ‘노룩(no look) 퍼팅’을 남몰래 해왔다는 게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는 비판론과 ‘오죽했으면’이란 동정론이 부딪치고 있지만 가르시아는 ‘내 갈 길 간다’는 입장이다.

퍼팅 덕분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는 모처럼 챔피언조에서 티오프하게 됐다. 가르시아는 4일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의 잭슨골프장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샌더슨팜스챔피언십(총상금 660만달러) 3라운드에서 6타를 줄였고 사흘 합계 14언더파 202타를 쳐 공동 선두로 라운드를 마쳤다. 3라운드 공동 선두는 그가 약 3년 만에 기록한 최고 성적이다.

“마스터스 때도 ‘노룩’으로 효과 봤다”

가르시아는 2017년 마스터스에서 통산 10승을 올린 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극심한 퍼팅 부진이 항상 발목을 잡았다. 지난 시즌 티샷으로 번 타수는 0.848타로 전체 3위였는데 퍼팅으론 0.754타를 잃었다. 전체 187위에 해당하는 숫자다. 올해도 드라이버로 얻은 타수(1.317타·5위)를 그린 위에서 퍼팅(-1.454타·246위)으로 까먹고 있다.

예전에 가끔 시도해 먹혔던 ‘노룩 퍼팅’을 부진 탈출을 위해 그동안 몰래 시도했는데, 그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연습할 땐 분명히 눈을 떴는데, 정작 퍼트할 땐 눈을 감은 것이다. 가르시아는 “(눈 감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고 반문하면서 “(노룩 퍼팅을 한 지) 3년 정도 됐는데, 마스터스에서 우승할 때도 눈을 감았다. 눈으로 직접 보면서 집중하려고 할 때보다 자유로운 느낌으로 퍼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눈을 뜨고 할 때도 있지만 70~75% 정도는 눈 감고 퍼트한다”며 “이번 대회는 그린이 빨라 효과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절실함에 ‘눈 감은’ 선수들

그린은 선수들의 절절한 사연이 녹아 있는 곳이다. 노룩 퍼팅에 구원 요청을 한 이는 가르시아만이 아니다. 2016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혼다 타일랜드에서 정상에 오른 렉시 톰프슨(25·미국)도 마찬가지. 한때 울면서 퍼팅했을 정도로 입스(yips)에 가까운 고통을 호소한 퍼팅 부진 경력자다. 절실함에 노룩 퍼팅을 했고 결국 우승까지 차지했다. 당시 톰프슨은 “한 번은 눈을 뜨고 퍼팅했을 때 공이 3m나 지나간 뒤에야 멈췄다”며 “그 이후로 눈을 감았는데 효과적이었다. 깊게 호흡한 뒤 내 스트로크에 집중한다”고 했다.

전설의 골퍼 보비 로크(1917~1987),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골프해설가 조니 밀러(73)도 한때 노룩 퍼팅을 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터스 챔프 조던 스피스(27·미국)도 공을 바라보지 않고 홀을 보며 퍼팅하는 노룩 퍼팅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동안 몇몇 전문가는 ‘노룩 이펙트’가 분명히 있다고 주장해왔다.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하는 프로 골퍼들은 ‘머슬 메모리’를 갖고 있는데, 눈으로 습득하는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이 기억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미국 유명 교습가 제임스 시크먼은 골프닷컴에 게재한 칼럼에서 “퍼트는 방해받지 않고 홀에 공을 넣는 작업인데, 눈을 감으면 잡생각이 없어지고 홀만 떠오르게 된다”고 적었다. 조앤 비커스 캐나다 캘러리대 박사는 ‘안정된 눈’이라는 이론을 펼치며 퍼트할 때 눈을 안정되게 하면 뇌 활동이 조화롭게 이뤄져 성공률이 높아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엔 ‘정석’으로 회귀

하지만 노룩 퍼팅은 어디까지나 둔감해진 퍼팅감을 끌어올리는 ‘임시 극약처방’이라고 주장하는 ‘정석파’가 다수다. 100년이 넘는 골프 역사에서 노룩 퍼팅으로만 꾸준히 정상을 지킨 선수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5)와 ‘퍼팅 황제’ 스티브 스트리커(53·이상 미국) 역시 끝까지 정석을 고수하면서 정상의 자리에 섰다. 노룩 퍼팅을 시도했던 톰프슨과 스피스 모두 꾸준히 정상급 기량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가르시아 역시 지난 US오픈 땐 눈을 뜨고 퍼트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