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바지 입은 승부사, 또 연장불패 '마술'…김세영, 10개월 만에 LPGA 정상 오르다
전반 9홀 4타 잃고 '흔들'
17번홀 보기로 다시 위기
마지막홀 버디로 '기사회생'
‘빨간 바지의 마술사’ 김세영이 다시 한번 ‘연장의 여왕’임을 과시했다. 피 말리는 연장 승부를 뚫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올 시즌 첫승이자 통산 8승을 달성했다. 지난해 7월 손베리크리크 LPGA클래식 이후 10개월 만에 우승컵에 입맞추며 우승상금 27만달러의 주인공이 됐다. 최종합계 7언더파 281타.
LPGA투어 8승 가운데 이 대회를 포함해 절반인 4승이 연장 우승이다. 퓨어실크 바하마 LPGA클래식, LPGA롯데챔피언십(이상 2015년), 마이어 LPGA클래식(2016년)에서도 연장전에서 우승을 확정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선 한화금융클래식(2013년), NH투자증권 레이디스챔피언십(2014년) 등 5승 가운데 2승을 연장전에서 수확했다.
김세영은 이날도 빨간 바지를 입고 3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했다. ‘강심장’ 김세영의 스타일로 보면 웬만해선 뒤집히지 않는 격차였다. 우승으로 가는 길은 더할 나위 없이 험난했다. 1번홀(파4)부터 티샷이 감기기 시작했다. 첫 홀 더블 보기로 액땜을 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보기 두 개가 이어졌다. 전반 9번홀까지 4타가 날아갔다. 15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으며 추스르는 듯했지만 17번홀(파3)에서 다시 위기를 맞았다. 티샷이 밀려 벙커로 들어갔고, 이어진 벙커샷까지 두껍게 맞으며 보기를 내준 것. 7언더파로 먼저 경기를 끝낸 브론테 로(영국)가 어부지리로 한 타 차 단독 선두로 떠올랐다. 이븐파 공동 20위로 최종일을 출발한 로는 15번홀(파5) 이글을 포함해 보기 없이 7타를 줄여 뒷조에서 따라오던 김세영을 압박했다.
‘데자뷔’ 같은 4번 아이언의 위력
여기에 ‘핫식스’ 이정은까지 가세하면서 우승 경쟁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정은은 15번홀 이글, 16번홀(파4) 버디, 18번홀(파5) 버디를 골라내는 등 막판 4개 홀에서 4타를 줄여내 로와 공동선두를 이뤄냈다.
김세영은 마지막홀에서 반드시 버디 이상을 잡아내야 연장전에 갈 수 있었다. 18번홀(파5)에서 그의 집중력이 빛을 발했다. 4번 아이언으로 친 샷은 190야드가량 날아가 그린 입구에 안착했다. 이 공이 이정은-로-김세영 간 ‘3자 연장’으로 가는 버디로 연결된 것이다.
연장 첫 홀에서 친 4번 아이언 세컨드 샷은 직전 18번홀의 ‘데자뷔’처럼 같은 지점에 떨어졌다. 김세영은 이정은과 로의 공을 외면한 홀컵으로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연장승부사의 면모를 과시했다.
김세영은 우승을 확정지은 뒤 가슴을 두드리며 피말리는 승부의 압박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는 “정말 힘들었다. 하루 종일 부담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17번홀 파3에서 보기를 범한 게 내겐 정말 나쁜 일이었다. 지금도 심장이 바깥에 나와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꾸준함을 유지하려고, 집중하려고 노력했다”며 “오늘 경기는 내게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고 우승 소감을 마무리했다.
물오른 핫식스 “다음엔 내 차례!”
김세영은 이번 우승으로 한국인의 LPGA 통산 다승 순위에서 박세리(25승), 박인비(19승), 신지애(11승), 최나연(9승)에 이어 김미현(8승)과 함께 공동 5위로 올라섰다. 한국 선수들은 올 시즌 11개 대회에서 총 6승을 합작했다.
이정은은 우승컵을 들어올리진 못했지만 LPGA투어 진출 이후 최고 성적을 올렸다. 지난달 열린 메이저대회 ANA인스퍼레이션에서 공동 6위를 기록한 게 지금까지 가장 좋은 성적표다.
우승 경쟁을 펼쳤던 ‘맏언니’ 지은희는 최종합계 5언더파로 양희영과 함께 공동 4위에 올랐다. 이 대회 ‘톱10’ 가운데 한국 선수가 네 자리를 차지했다.
전날 하루에만 8오버파 80타를 쳤던 박인비는 마지막날 3타를 줄여 전인지 등과 함께 이븐파 공동 23위로 대회를 마쳤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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