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라이프] 최상준 "골프는 그 사람의 거울… 정직이 최고 덕목이죠"
코스닥 상장사 남화토건의 최상준 부회장(79·사진)은 아직도 34년 된 책상을 그대로 쓴다. 집무실 전화기도 30년 넘은 골동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몽당연필로 메모했고 결재사인을 했다. 그렇게 모은 돈 150억원을 기부했다. 헌혈도 98회나 했다. “65세 나이제한에 걸려서 어쩔 수 없었지. 65세 생일 하루 전에 98번째이자 마지막 헌혈을 했는데 섭섭하더라고. 허허.”

◆‘나에겐 엄격, 남에겐 아량’

‘나보다 남’에게 초점을 맞춘 삶의 궤적은 남화토건에 입사한 1964년부터 시작됐다. 정직한 기업, 나누는 기업을 꿈꿨던 창업자 최상옥 회장(90)의 철학은 곧 친동생인 최 부회장의 좌우명이 됐다. 40% 이상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던 외환위기 때도 회사는 단 한 명도 정리해고하지 않고 버텼다. 대신 교육훈련을 받도록 해 6~7개월 뒤 전원 업무에 복귀시켰다. 최상옥 회장은 “나에겐 엄격하되 남에게는 너그러워야 한다”고 늘 동생에게 말했다. 그러는 사이 남화토건은 ‘3무 기업(三無企業)’으로 명성을 쌓았다. 부채가 없고, 어음을 발행하지 않으며, 구조조정이 없다. 2012년에는 광주·전남지역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할 정도로 사업은 번창했다.

골프도 그의 삶을 빼닮았다. “골프는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 같아요. 잘 치고 싶지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온 건 정직한 골프였어요.”

한때 2언더파까지 쳤던 그에게 번번이 지던 친구와 부부 동반 라운드를 한 때였다. 자기보다 멀리 날린 최 부회장의 공을 페어웨이에서 발견한 친구는 얄미운 마음에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공을 발로 지그시 밟아버렸다. 그러고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지켜봤다. 공이 땅에 박혀 있는 걸 뒤늦게 발견한 최 부회장은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박힌 공을 빼내지 않고 그대로 샷을 했다. “공을 밟아놓은 내가 되레 얼굴이 확 달아오르더라고….” 50년 지기 친구의 증언이다.

최상준 부회장은 모든 클럽 페이스에 녹색 테이프(노란색 원 내)를 붙여놨다. 스윗스폿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최상준 부회장은 모든 클럽 페이스에 녹색 테이프(노란색 원 내)를 붙여놨다. 스윗스폿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4687라운드’… 지독한 골프사랑

그는 70이 넘은 나이에 등단한 늦깎이 수필가다. 틈틈이 낸 수필집이 아홉 권이다. 기업가로, 봉사활동 단체장으로, 각종 스포츠단체 회장으로 수십 개 직함을 가진 와중에도 떠오르는 단상을 빼먹지 않고 메모한 덕분이다. 골프 역시 클럽을 처음 잡은 날부터 최근 라운드까지 모든 기록이 빠짐없이 정리돼 있다. 1983년 6월24일 무등CC에서 생애 첫 라운드를 한 그는 2017년 11월12일까지 34년간 모두 4687라운드를 돌았다. 메모에는 언제 어디서 누구랑 골프를 했는지, 성적은 어땠는지가 일목요연하게 기록돼 있다. “1년에 138라운드꼴로 골프를 친 거더라고. 골프에 관한 한 부러울 게 없는 셈이죠.”

그의 비거리는 180~200m쯤 된다. 팔순의 나이와 작은 키(160㎝)를 감안하면 남다른 수치다. 스윗스폿을 ‘절대가치’로 고수한 덕분이다. “스윗스폿에 맞느냐에 따라 20~30m는 차이난다는 걸 믿어야 해요. 원리를 잘 지키면 골프에서 뜻하지 않게 얻는 선물이 많아. 그게 비거리인 듯해요.” 그는 스윗스폿을 잘 지키기 위해 모든 클럽 페이스 윗부분에 녹색 테이프로 표시를 해놨다. 이 클럽 역시 산 지 30년 가까이 됐다.

삶이 그랬듯, 골프도 그에겐 도전의 대상이었다. 32년 전인 1985년 6월 해가 긴 날을 골라 그는 혼자서 72홀을 돌았다. 투어 프로들이 나흘 동안 소화하는 라운드를 하루에 다 돈 것이다. 올해에는 26일간 하루도 쉬지 않는 연속 라운드 목표를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34년 골프 인생에서 아직도 해보지 못한 게 있다. 바로 홀인원이다. ‘에이지 슈트(나이와 같거나 적은 타수)’는 4회, 이글 18회, 5개홀 연속 버디 등 해볼 만한 것은 다 해봤지만 유독 에이스(홀인원)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간 찾아올 거라고 믿는다.

“우리 몸에 왜 손이 두 개 달려 있는지 아세요? 한 손은 자기를 위해서 쓰라고 있는 거고, 다른 한 손은 남을 위해서 쓰라고 준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요. 그 두 손으로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건 조물주가 주신 덤인 것 같아. 늘 감사해야 할 일이지….”

무안=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