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프로의 유구무언] 내기 할 때 웨지 적거나 클럽 바꿨다면 '경계' 풀어라
벌써 한국경제신문과 약속한 20회째가 됐다. 유구무언(有球無言) 시즌 1을 마칠 시간이다. 마지막 회이니 공자님 같은 말씀보다는 재미있는 얘기를 하려고 한다. 오늘의 주제는 ‘내기 골프’다.

내기 골프를 하기에 만만한 상대는 누구인가. 바로 다음과 같은 사람이다. 특히 상대를 필드에서 처음 봤을 때 가릴 수 있는 유용한 팁이니 기억하기 바란다.

[김용준 프로의 유구무언] 내기 할 때 웨지 적거나 클럽 바꿨다면 '경계' 풀어라
맨 먼저 20야드 더 나간다며 드라이버를 새로 사온 사람이다. 동반자가 새 드라이버를 사왔다고 자랑을 한다면 찬스다. 하물며 똑같은 사양으로 맞춰도 손맛이 다른 것이 드라이버다. 그런데 새 드라이버를 사서 연습도 몇 번 안 하고 실전에 투입하면 그날은 십중팔구 망한다. 이런 상대가 걸어오는 내기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배판이 아니라 네 배판도 받아들여라. 드라이버를 교체하면 최소한 한 달은 연습해야 긴장감 속에서도 밥값을 할 수 있다. 프로들은 시즌 중 여간해선 드라이버 사양을 바꾸지 않는다.

다음은 아이언을 새로 사 가지고 와서 하나씩 비닐 포장을 뜯으며 라운드하는 사람이다. 나는 여러 번 이런 사람을 겪어봤다. 의기양양하게 시작하지만 풀이 죽어서 집에 돌아가는 경우 말이다. 아이언이 바뀌면 거리감이 달라진다. 절대 고득점을 할 수 없다. 면피나 하면 다행이다. 버디 잡는 클럽은 아이언이다. 내 사부가 한 말이다. 아이언을 바꿨다면 번호별로 일정한 거리를 내기 전에는 진검승부를 피해야 한다.

최근에 우승한 프로가 쓰는 모델이라며 퍼터를 막 바꾼 사람도 내기 상대로는 환영이다. 퍼터는 드라이버 못지않게 민감한 클럽이다. 퍼터가 바뀌면 롱 퍼팅 때 거리감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스리 퍼트가 쉽게 나온다. 퍼터를 바꿔 온 상대가 있다면 그날은 오케이(컨시드) 주는 거리를 짧게 정하라. 그리고 초반에 야박하게 적용해 보라. 상대방은 반드시 무너진다.

롱 아이언 밑바닥이 깨끗한 사람도 만만하다. 롱 아이언 연습을 별로 안 했다는 얘기니 실력이 좋을 리 없다. 물론 쇼트 아이언 밑바닥까지 깨끗하다면 최근에 골프채를 바꿨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골프백 속에 웨지가 하나밖에 없는 사람도 크게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 웨지 하나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마귀도 가끔 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지극히 낮다. 웨지 숫자가 적은 대신 우드나 하이브리드가 백 속에 가득하다면 고수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반대로 내기를 해서는 안 되는 상대는 어떤 사람일까. 맨 먼저 장갑을 끼지 않고 볼을 치는 사람이다. 멕시코 출신 골프 여제 로레나 오초아처럼 말이다. 장갑을 끼지 않고 볼을 친다면 고수일 확률이 높다. 연습을 엄청나게 해 장갑 없이도 그립이 미끄러지지 않는 골퍼라는 얘기다. 이런 상대와는 인사치레로 하는 내기 이상을 하려면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것이 좋다.

웨지의 페이스로 볼을 끝없이 튀기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골프채를 들고 살았다는 얘기다. 롱 아이언 밑바닥이 많이 닳아 있는 사람과 골프백 속에 웨지가 나보다 많은 사람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 십중팔구 나보다 상수다.

맨 마지막으로 팔뚝에 문신이 있는 사람과는 절대 내기를 하지 마라. 필자도 경험이 없어서 이유는 짐작만 할 뿐이지만 골프 역사가 우리나라보다 긴 서양의 속담이니 믿는 것이 좋다.

유구무언 독자의 골프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동반자에게 두려운 상대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는 데 조금이라도 이 칼럼이 보탬이 됐다면 행복하겠다.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 Caf.naver.com/satang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