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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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6월 7일 나온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에는 회장 취임 이후 5년 반 동안의 위기감이 담겨 있었다. 삼성 임직원이 ‘국내 1위’라고 자평하던 삼성전자 가전제품은 선진국에서 찬밥 대우를 받았다. 생산라인에선 불량 부품을 칼로 깎아 억지로 끼워맞추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대로 가다간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이 선대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주문하며 변화와 혁신에 속도를 낸다. 목표는 ‘글로벌 일류기업’. 삼성 경영의 패러다임은 이때부터 ‘양(量)’에서 ‘질(質)’로 바뀐다.

‘품질의 삼성’ 기반

이건희가 만든 '품질의 삼성'…JY '초일류 삼성'으로 계승한다
6일 삼성에 따르면 이 선대회장이 제시한 신경영의 핵심은 ‘품질 최우선’이다. 당시 그는 삼성이 자만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국내 1등’이란 자만심이 제품을 갉아먹고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199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가전매장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삼성 제품을 본 이 선대회장은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냐”며 임직원을 질타했다.

팔리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질’을 중시해야 한다고 판단한 그는 “질을 위해서라면 양을 희생시켜도 좋다”고 강조했다. 불량이 발생하면 가동을 중단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는 라인스톱제가 시행됐다. 휴대폰 불량률이 11% 이상으로 치솟은 1995년 3월엔 ‘애니콜 화형식’을 통해 품질경영의 의지를 공표했다. 삼성 관계자는 “품질경영은 삼성이 스마트폰, TV 등의 사업에서 세계 1위에 오르는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이 선대회장의 ‘품질경영’과 ‘초격차 투자’를 발판으로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삼성전자의 자산은 1993년 41조원에서 2022년 448조원으로 992.7%, 매출(연결 기준)은 같은 기간 28조6847억원에서 302조2314억원으로 953.6% 급증했다. 삼성전자의 브랜드가치는 세계 5위(887억달러)로 도요타(598억달러) 코카콜라(575억달러) 나이키(503억달러) 등을 앞섰다.

‘30년 미래’ 준비하는 이재용 회장

선대회장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과제로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일류 기업’ 도약이 꼽힌다.

이 회장은 2014년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 5세대(5G) 통신 등을 집중 육성해 삼성의 위상을 더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안정적인 세계 2위로 올라섰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누적 수주 100억달러를 넘어서며 세계 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이 회장은 삼성의 미래를 위해 인공지능(AI)과 로봇, 자동차 전자장치 등 차세대 먹거리 관련 사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삼성 안팎에선 이 회장이 ‘제2의 신경영’을 통해 삼성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것이란 관측이 꾸준히 나온다. 그는 창의성이 발현되는 유연한 조직문화 조성 등을 통해 미래 사업 관련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사회공헌을 통해 삼성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 선대회장 때의 키워드가 ‘카리스마’와 ‘추진력’이었다면 이 회장은 ‘소통’과 ‘사회와의 동행’”이라며 “이 회장이 새로운 리더십을 기반으로 미래 사업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최예린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