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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인터뷰
존 터너 국제 XBRL협회 대표가 확장된 XBRL 적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선한결 기자
존 터너 국제 XBRL협회 대표가 확장된 XBRL 적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선한결 기자
“XBRL이 확대 적용되면 투자기관이나 애널리스트 등의 스몰캡(중소형주) 커버리지가 확 늘어날 겁니다. 구조화된 데이터 덕분에 기업 분석이 빨라지니 지금껏 투자 검토 후순위로 밀렸던 기업에도 기회가 오는 겁니다. 해외 투자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 새로 조명받을 수도 있고요.”

존 터너 국제 XBRL협회 대표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XBRL이 한국 자본시장에 활기를 더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터너 대표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에서 금융감독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한국XBRL본부가 공동 개최한 ‘2023 XBRL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XBRL은 기업의 재무 정보를 국제 표준화된 전산 언어로 공시하는 일을 뜻한다. 터너 대표가 이끄는 국제 XBRL협회는 이 과정에서 기술·소프트웨어 기준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각국 자본시장 감독 당국과도 협업한다.

한국, DART 있지만 '데이터 디지털 전환은 아직 먼 얘기'

한국은 이미 XBRL을 활용하고 있다. 기업공시정보 전자공시시스템(DART)를 통해서다. 하지만 아직 데이터·디지털 전환을 논하기엔 기초적인 단계란 지적이다.

터너 대표는 “대부분 기업 공시는 종이 문서 대신 단순히 PDF 문서 파일을 업로드하고, 주요 수치를 DART 시스템에 입력하는 정도”라며 “이때문에 표면적 정보를 알 수 있는 데에 그친다”고 했다. 투자자가 2차전지 분야 주요 기업들의 성장세를 분석하기 위해 공시 PDF 파일을 하나씩 열어보고 자료를 따로 취합해야 하는 식이란 얘기다.

반면 확장된 XBRL(인라인 XBRL)은 데이터를 훨씬 쉽고 빠르게 분석할 수 있다. 회계 공시 단계부터 전산 데이터를 상세히 입력하기 때문이다. 터너 대표는 “이를 통하면 사람도 읽고, 컴퓨터도 읽을 수 있는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기업 애플의 확장된 XBRL 공시 사례.
미국 기업 애플의 확장된 XBRL 공시 사례.
이미 확장된 XBRL을 활용하고 있는 미국 기업들은 전자공시 문서의 어느 숫자를 클릭하든 곧바로 수치에 대한 분류 정보와 간략한 설명이 뜬다. 프로그램 소스를 활용해 특정 수치만 모아 추세를 분석할 수도 있다.

"확장 XBRL,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도움"

터너 대표는 “확장된 XBRL을 쓰면 투자 설명(IR) 측면에서 여러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자가 DART 공시를 일일이 보지 않고도 기업 분석을 할 수 있어서다. 그는 “개인투자자의 분석 범위도 늘어날 것”이라며 “기존엔 신용정보사나 시장분석기업 등이 제한적으로 제공해온 데이터를 누구나 보고 활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도 일부 도움이 될 전망이다. 한국말을 하지 않는 투자자 대상으로도 훨씬 쉽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서다.

기존엔 일부 기업만 자체적으로 영어 공시 등을 번역·작성해 제공한다. 확장된 XBRL은 세계 공통인 전산언어로 공시를 내는 방식이라 번역이 훨씬 쉽다.

터너 대표는 “앞서 한국이 DART를 도입하자 한국 기업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가 많이 늘었다”며 “확장된 XBRL을 적용하면 외국인 투자자가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돼 그만큼 더 많은 투자 가능성을 열 것”이라고 했다. 한국어를 할 수 없다면 들여다보기 힘든 기업의 사업 모델 등을 외국 투자 기관도 알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중소·중견기업의 경우엔 외국 기업·기관과의 자금, 공급망, 거래 관계 등을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클 것”이라며 “서로 데이터를 번역해 정식으로 주고받지 않아도 잠재적 협력사나 기관이 XBRL 데이터를 보고 그 기업에 대해 판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이미 확장된 XBRL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에선 한국의 도입이 빠른 편이다.

국내에선 올 3분기부터 확장된 XBRL이 기업 규모와 유형 등에 따라 차차 확대 적용된다. 홍콩은 도입을 추진하고 있고 대만·싱가포르 등은 아직이다. 터너 대표는 “지금은 투자를 비롯해 사회 전반이 인공지능(AI)·데이터 기반으로 전환하고 있는 시기”라며 “한국이 일부 주요국보다는 늦었지만 나름 적기에 확장된 XBRL을 도입한다고 본다”고 했다.

XBRL 도입 첫 해 '태깅' 공들여야

기업엔 마냥 ‘꽃길’이 깔린 것은 아니다. 확장된 XBRL을 초반 적용하는 데엔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수치를 전산 데이터로 입력하는 과정에서 재무 정보에 특정 식별자(태그)를 붙여 분류하는 '태깅' 작업이 필요하다. 터너 대표에 따르면 기업 규모와 구조 등에 따라 통상 600~1500항목에 대해 이뤄진다. 각 기업들이 인적·물적 자원을 추가로 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터너 대표는 “도입 첫 해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태깅 작업에 따라 앞으로 그 기업의 재무 공시 기조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XBRL 태깅은 기업이 특정 항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등을 공개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제 자본시장에서 정보의 개방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입니다. XBRL 태깅은 앞으로 시장에 공개되는 기업이 일정 부분 주체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여지를 주죠. 단순히 회계법인 등에 작업을 맡기지 말고 내부 논의를 거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기업이 XBRL 확장 도입에 꼭 필요한 일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이해, 활용, 설명이다. 터너 대표는 “XBRL은 마술봉이 아니다”라며 “확장된 XBRL을 도입했다고 바로 외국인 자본이 유입되는 게 아니라 정보 접근성을 제대로 끌여올리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는 “기업이 XBRL을 충분히 이해하고, 구축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지 고민해야 한다”며 “투자자들에게도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먼저 제시하라”고 조언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