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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트렌드

AI 테마로 오른 주가의 단기 과열 여부 놓고 ‘갑론을박’
메모리반도체 업황 회복 따른 중장기 우상향 전망엔 공감대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엔비디아의 가이던스(자체 실적 전망)에서 시작된 인공지능(AI) 관련 분야의 성장 기대감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도 신고가로 끌어 올렸다. AI 연산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들어가는 고성능 메모리반도체 경쟁력이 뛰어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수혜 대상으로 꼽히면서다.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빅2의 주가 우상향 전망엔 이론이 많지 않지만, 엔비디아발 훈풍을 탄 급등 이후 단기적인 움직임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이번 상승세가 하반기에 본격화될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생산 감축에 따른 시황 회복 모멘텀으로 이어진다는 낙관론과 단기 조정을 거칠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분석이 맞서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삼성전자는 7만1400원에, SK하이닉스는 10만8600원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직전 3거래일동안 삼성전자는 5.55%, SK하이닉스는 12.90% 상승해 나란히 52주 신고가를 다시 쓴 데 따라 지난달 마지막 거래일에는 조정을 받았다.

지난달 25~30일 나타난 상승세의 배경은 엔비디아의 2~4월 분기 실적 발표다. 발표된 실적이 컨센서스(전망치 평균)를 웃돌았고, 다음 분기(5~7월) 매출 가이던스는 예상치 71억5000만달러보다 50% 이상 많은 110억달러가 제시됐다. AI 연산에 쓰이는 GPU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다. 이후 엔비디아 주가도 강세 흐름을 보였고, 지난 30일(현지시간) 장중에는 시가총액이 1조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챗GPT를 비롯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생성형 AI 구동을 위해서는 고성능 GPU가 필요하고, 이 고성능 GPU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반도체가 들어간다.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50%, 삼성전자가 40%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AI 수요 급증 전망의 훈풍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까지 끌어 올린 배경이다.

“올해 HBM 시장 규모, 전체 D램 시장의 10% 내외”

하지만 증권가에선 AI 산업의 확대 기대감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밀어 올릴 만한 이슈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우선 실적에서부터 격차가 크다. 반도체 공장 없이 설계만 하고 제조는 위탁생산(파운드리)에 맡기는 엔비디아의 올해 첫 번째 분기 영업이익률은 29.8%에 달했고, 공격적인 가이던스를 달성하면 수익성이 더 향상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메모리반도체업계는 적자에서 벗어날 시점을 저울질하는 실정이다.

AI용 반도체에 들어가는 고성능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시황을 바꿀 수준도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내놓은 올해 하이엔드급 서버 수요 전망(23만5200대)을 바탕으로 HBM 시장 규모를 약 4억7000만달러로 추산하며 “이는 전체 D램 수요의 10% 내외”라고 설명했다. 당장 메모리반도체 기업의 실적을 눈에 띄게 개선시킬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공모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 A씨는 “엔비디아 이슈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추가로 상승하게 하기 위해서는 실제 AI 반도체용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확인돼야 한다”며 “지금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매수하기보단, 관망하거나 대안이 될 수 있는 섹터로 자산 일부를 옮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조정 없이 ‘업황 회복’ 모멘텀으로 상승세 이어갈까

다만 이번 엔비디아 실적 발표를 계기로 부각된 AI 이슈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밀어 올릴 만했다, 즉 ‘오버슈팅’은 아니었다고 A씨는 분석했다. 그는 “주가라는 게 일단 기대감에 따라 형성된 뒤, 나중에 숫자(실적)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다시 하락하기 마련”이라며 “지금은 충분히 기대를 품을 수 있는 구간이고, 그 기대 때문에 주가가 많이 올랐다”고 평가했다.

AI 관련 투자에 불이 붙으며 관련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성장할 것이란 전망도 눈길을 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제시한 가이던스에 대해 “빅테크들의 AI 관련 투자 (경쟁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방증”이라며 “기업들은 AI 경쟁에서 밀릴 경우 영원히 도태될 수 있다는 공포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엔비디아가 일으킨 AI 열풍이 사그라들더라도, 메모리반도체 업황 회복이 가시화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상승세가 이어질 가능성도 점쳐졌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감산 효과가 나타나기에 4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의 공급 축소 효과는 8~9월부터 수급에 본격 반영될 전망”이라며 “최근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주가의 업황 선행성과 역사적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밑도는 가격 매력을 감안하면. 기다리는 조정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펀드매니저 B씨는 AI 모멘텀은 트리거였을 뿐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 상승 배경을 업황 회복 가속화로 분석했다. 그는 “AI 반도체에 들어갈 D램 수요 증가는 지금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다”라며 “아직 D램 가격이 내려가고 있어 구매처들도 눈치를 보고 있지만, 바닥을 쳤다는 게 확인되면 수요가 한꺼번에 몰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여름 이후엔 메모리반도체 쇼티지(공급부족) 우려로 인해 캐파 증설(생산능력 확대)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매수세, 당분간 더 이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 상승을 주도한 외국인 매수세의 배경이 엔비디아발(發) AI 모멘텀이 아닌 메모리반도체 업황 반등 기대감이었다는 A씨의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이 미국 메모리반도체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에 나선 데 따른 반사이익, 웨스턴디지털과 키옥시아의 합병에 따른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공급 감소 기대감 등이 SK하이닉스에 대한 외국인 매수세를 촉발했다고 A씨는 설명했다.

B씨는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 매수세는 길게 이어지고 있지만, SK하이닉스에 대해서는 최근 들어 시작됐다”며 “D램 가격이 어느정도 반등하기 전까진 매수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앞으로 경기 침체로 성장이 희소해질 것”이라며 “IT와 AI는 성장 여력이 남아 있는 섹터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두 섹터에 필수적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한경우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