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전력 서울본부 주변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무디스는 이날 한전 자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최혁 기자
26일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전력 서울본부 주변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무디스는 이날 한전 자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최혁 기자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25일(현지시간) “전기요금 추가 인상 가능성이 낮다”며 한국전력의 자체 신용등급을 ‘Baa2’에서 ‘Baa3’로 강등했다. Baa3는 ‘투자적격’ 등급 중 가장 낮은 단계다. 정부의 지원 가능성을 고려한 한전의 장기 신용등급은 Aa2로 유지됐지만 시장에선 전기요금 인상 억제에 따른 한전의 부채 증가에 국제 신용평가사가 경고를 보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채 줄이기 어려워”

무디스, 한전 신용도 '투기등급' 직전까지 낮춰
자체 신용등급은 정부의 지원 가능성을 배제한 신용도다. 즉 한전이란 회사 자체만 놓고 봤을 땐 신용등급이 투기등급 직전까지 떨어진 것이다. 한전의 재무상태 악화에 따라 100%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자체 신용등급 역시 한전처럼 ‘Baa2’에서 ‘Baa3’로 떨어졌다.

무디스는 전기요금 인상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부채가 늘어나는 점을 문제 삼았다. 무디스는 “전기요금 추가 인상이나 추가 부채 감소에 대한 가시성이 낮은 점을 감안할 때 한전의 재무지표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느릴 것”이라며 “이달까지 이뤄진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현금흐름 증가만으로는 부채를 줄이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전은 향후 1~2년간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이 75~80%를 유지할 것”이라며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이 85% 이상으로 높아지면 한전의 자체 신용등급을 ‘Ba1’ 이하로 낮출 수 있다”고 했다. Ba1은 투기등급이다.

신평사의 ‘경고’

국제 신평사의 한전 신용등급 강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3대 신평사 중 한 곳인 S&P는 지난해 5월 대규모 적자를 이유로 한전의 자체 신용등급을 투자등급 중 최하위인 ‘BBB-’에서 투기등급에 해당하는 ‘BB+’로 강등했다. 또 다른 국제 신평사인 피치도 한전 자체 신용등급을 BBB-로 매기고 있다.

물론 한전은 민간 기업과 달리 정부 보증을 받기 때문에 자체 신용등급이 회사채 발행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정부 보증을 감안한 한전의 장기 신용등급은 무디스 Aa2, S&P AA, 피치 AA-로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과 같다.

하지만 국제 신평사의 신용등급 강등을 가볍게 흘려넘겨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전은 정부가 보증해주기 때문에 자체 신용등급이 채권 발행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면서도 “재무구조 악화에 일종의 경고를 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FICC 부장도 “자체 신용등급 하락은 재무상태가 녹록지 않다는 것을 해외 투자자에게 보여주는 경고장 같은 것”이라고 했다. 한전이 지금처럼 원가 이하로 전기를 파는 구조가 지속되면 재무구조 개선이 어렵고 해외 투자자에게도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전은 2001년 5조8000억원 영업적자에 이어 지난해 32조6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 1분기에도 6조2000억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선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기요금에 영향을 미치는) 천연가스 가격이 최근 하향 안정됐지만 현재 전기요금 수준으로는 올해 한전의 흑자전환이 어려울 것”이라며 “한전이 원활하게 전기를 공급하려면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하고, 적자에서 탈피해 재무구조까지 개선하려면 전기요금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