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기 둔화 여파 등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국내 벤처·스타트업 업계를 위해 10조원이 넘는 정책자금을 추가로 투입한다. 은행의 벤처펀드 출자 한도를 확대하고, 민간 벤처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주요 출자 법인의 출자 세액공제를 신설하는 등 규제 개선도 추진하기로 했다.

돈줄 마른 스타트업에 10.5조원 추가 투입…"규제 풀어 민간투자 활성화"
중소벤처기업부와 금융위원회는 20일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혁신 벤처·스타트업 자금 지원 및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투자시장 위축으로 국내 벤처업계 투자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올 1분기 국내 벤처투자액은 8815억원으로 1년 전보다 60.3% 줄었다.

정부는 벤처·스타트업 업계에 보증과 융자를 비롯한 정책금융 2조2000억원, 정책펀드 3조6000억원, 연구개발(R&D) 4조7000억원 등 10조5000억원을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이번 대책은 기업 성장 단계별로 정책자금을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자금 조달이 힘든 창업 초기 기업(시리즈A 투자까지 유치한 기업)에는 1조2000억원 규모의 융자(저리 대출)를 지원한다. 민간 투자 시장에서 소외된 지방 혁신기업 등에는 보증연계 투자를 600억원 규모 확대한다. 정부의 ‘12대 국가전략기술 관련 연구개발’에는 올해 4조7000억원을 투입한다. 지원 대상은 주로 초기 테크 스타트업이다.

중기 성장 단계 기업(시리즈B에서 시리즈C 단계까지 투자받은 기업)은 후속 투자 유치의 어려움을 덜어줄 계획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세컨더리펀드의 조성 규모를 기존 5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세 배로 늘린다. 세컨더리펀드는 벤처펀드가 투자한 주식을 매입해 수익을 올리는 펀드로 만기 도래 펀드의 투자금 회수를 돕는 수단이다.

후기 성장 단계 회사(시리즈C 이후 투자 유치 기업)를 위해선 해외 진출과 인수합병(M&A) 지원에 정책 자금을 집중한다. 산업은행은 3000억원 규모의 ‘글로벌 진출 지원 펀드’(가칭)를 신규 조성한다.

민간 부문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규제 완화도 이뤄진다. 먼저 은행의 벤처펀드 출자 한도를 두 배(자기자본의 0.5%→1%)로 확대하기로 했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 국내 벤처기업의 해외 자회사에 투자할 경우 규제 강도를 국내 기업 투자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또 M&A 목적 펀드의 신주 투자 의무(현재 40% 이상)는 폐지하고, 상장사 투자 규제(현재 최대 20%)도 없앤다.

정부는 벤처기업의 스톡옵션 부여 대상을 변호사 등 전문자격증 보유자에서 관련 경력자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벤처기업이 다양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 성장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다. 비상장기업 창업자에게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의 벤처기업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업계는 이번 대책을 반겼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고금리와 투자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일훈 티에스인베스트먼트 이사는 “M&A 벤처펀드의 레버리지 투자 허용은 투자 활성화를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지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융자 제공 기준이 높아 정말 돈이 필요한 스타트업이 이번 대책에서 소외될 우려가 있다”며 “정부의 펀드 출자금액이 늘어나도 경기 침체로 얼어붙은 투자시장을 녹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주완/허란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