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규모 7조달러(약 9123조원)인 미국 증권사 찰스슈와브가 ‘스톡런’(증권계좌 자금 유출) 위기에 놓였다. 최근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과 마찬가지로 투자 포트폴리오의 상당 부분을 장기 채권에 담았다가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규모 손실을 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찰스슈와브 경영진은 “충분한 유동성을 갖고 있다”고 즉각 해명에 나섰지만 투자자들의 의심은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금 간 7조달러 제국

"美 대형증권사 찰스슈와브 위험"…이번엔 '스톡런' 덮치나
블룸버그는 28일(현지시간) ‘저금리를 기반으로 건설된 7조달러 제국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찰스슈와브는 2020년과 2021년 저금리 당시 장기 채권에 대거 투자했는데, 최근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큰 손실을 보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채권 금리가 급등하면서 채권 가격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 가능성을 감지한 고객들은 찰스슈와브의 증권 계좌에 담아둔 돈을 다른 금융회사로 옮기기 시작했다. 찰스슈와브는 연례 보고서에서 “2022년 단기 금리가 급격히 상승한 결과 고객이 특정 현금 잔액을 고수익 대안으로 이전하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찰스슈와브가 지난해부터 매도가능증권이 급격히 줄고 만기보유증권 규모가 단기간에 급증한 사실을 증거로 들었다. 매도가능증권은 채권 가격 하락에 따른 평가 손실을 기말에 반영해야 하는데, 만기보유증권은 그럴 필요가 없다. 블룸버그는 찰스슈와브가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한 채권을 만기보유증권으로 옮겨 채권 평가 손실을 줄이는 방식을 취한 것으로 해석했다.

찰스슈와브의 매도가능증권 규모는 지난해 초 2720억달러였지만 지난해 말 1279억달러로 줄었다. 반면 만기보유증권은 같은 기간 1053억달러에서 1731억달러로 늘었다.

장부 기재 기준을 변경해도 채권 손실을 다 만회할 순 없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3년 전까지 찰스슈와브 장부에 채권 가격 하락에 따른 매도가능증권의 미실현 손실이 없었지만 지난 3월엔 50억달러 이상으로 불었다.

찰스슈와브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순이자수익(net interest revenue)에 의존하는 것도 급격한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순이자수익이란 금융회사가 고객의 돈을 예치받아 줘야 하는 이자와 대출 및 투자 등으로 얻은 자산운용 수익의 차이를 뜻한다. 금융회사로선 금리가 상승할수록 고객의 자산 수익률을 올려야 할 부담이 생긴다.

그런데 최근처럼 고금리가 이어지고 주식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고객들로선 증권 계좌보다 대형 은행의 예금 계좌가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찰스슈와브에 대한 불안 심리가 확산하면서 주가도 연일 하락하고 있다. 이날 찰스슈와브 주가는 전날보다 1.84% 하락한 53.85달러를 기록했다. SVB 사태가 가시화한 3월 8일 이후 25% 급락한 수치다. 찰스슈와브 경영진은 진화에 나섰다. 월트 베팅어 찰스슈와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3일 “찰스슈와브는 다른 증권사와 달리 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등 현금 1000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금융회사의 약점 테스트”

일각에선 시장이 불안한 심리를 스스로 잠재우기 위해 금융회사의 약점을 돌아가며 시험해보고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CNBC에 따르면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는 이날 의회에서 “지금의 상황은 2008년과 다르며 시장은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의 불안심리가 조그마한 단서도 확대 해석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예를 들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주범’ 중 하나로 꼽힌 신용부도스와프(CDS)는 최근 하루 거래량이 한 건에 불과하지만 시장 불안의 원인이 됐다. 지난주 독일 도이체방크의 주가 급락도 CDS 프리미엄이 급등하면서 나타났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