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에서 현금을 넉넉하게 보유한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 부실 등 잇단 위기로 증시 변동성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다. 전문가들은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탄탄하고 보유 현금이 많은 기업일수록 위기에 강할 뿐만 아니라 신규 투자에도 적극 나설 수 있다고 분석한다.
"위기에 믿을 건 현금뿐"…HMM·한화·기아에 쏠린 눈

리스크 커질 땐 현금 쥔 기업

2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상장사 시가총액 상위 200개 기업 가운데 잉여현금흐름(FCF)이 가장 우수한 기업은 HMM이었다. HMM은 지난해 3분기 기준 누적 7조5318억원의 잉여현금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한화(6조4835억원) 기아(5조3981억원) GS(4조1623억원) 대한항공(1조8163억원) LG(1조4841억원) 순으로 잉여현금이 많았다.

시가총액 대비 FCF로 보면 한화의 현금 보유 능력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는 시총 대비 3.4배의 잉여현금을 쌓아뒀다. 이어 GS(1.14배) HMM(0.77배) 동국제강(0.36배) 롯데쇼핑(0.34배) 신세계(0.28배) 순이었다.

시총 대비 잉여현금이 가장 적은 기업은 한국가스공사였다. 가스공사의 작년 3분기 기준 누적 FCF는 -7조8970억원으로 이날 기준 시가총액(2조4509억원)보다 3.2배 넘는 현금이 부족했다.

FCF는 기업이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 가운데 영업비용, 설비투자액 등을 제외하고 남은 현금을 말한다. FCF가 높다는 것은 기업이 재무적으로 안정적임을 의미한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의 유동성 부족 현상이 자금 공급 부족으로 이어진다면 자체 현금을 많이 보유한 기업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며 “투자에 앞서 기업들의 현금 보유 수준을 꼼꼼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업이익률 등도 함께 따져야

전문가들은 보유 현금뿐만 아니라 영업이익률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감안하면 IT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의 업종이 비교적 위기에 더 잘 견딜 것으로 전망됐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국내 IT하드웨어업종 기업의 평균 잉여현금 비율(총부채 대비 잉여현금)은 지난해 기준 14.3% 수준으로 분석됐다. 국내 제조업 평균 잉여현금 비율이 5.1% 수준임을 고려하면 IT하드웨어업종이 평균적으로 더 많은 현금을 쥐고 있다는 얘기다. 이외에 소프트웨어(13.5%) 철강(7.8%) 헬스케어(17.6%) 운송(13.0%) 등도 부채 대비 현금 보유 비율이 높았다.

이 중 올해 영업이익률이 전년 대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은 소프트웨어, 헬스케어, IT하드웨어 등으로 평가됐다. 소프트웨어업종의 올해 예상 평균 영업이익률은 전년 대비 2.1%포인트 높은 10.2%, IT하드웨어 업종은 전년 대비 1.4%포인트 높은 7.6% 수준으로 전망됐다. 국내 대표 산업인 반도체업종은 잉여현금 비율은 13.1%로 우수한 편이나 올해 예상 영업이익률은 2.4% 수준으로 제조업 평균(5.4%)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됐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잉여현금 비율이 높아지면서 영업이익률이 유지 또는 상승할 수 있는 업종에서 주도주가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